[따옴표 저널리즘의 딜레마①] 당신은 또 누구의 목을 칠 것인가?

[따옴표 저널리즘의 딜레마①]
당신은 또 누구의 목을 칠 것인가?

YTN 박순표 해설위원

“반드시 경계해야 할 정치인의 언참言斬”
“정치는 말이고, 정치부 기자는 말을 선택하는 직업”
“정답은 없지만 고민 멈추면 오답만 되풀이될 뿐”

사람의 목을 베는 독설, 언참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은 의지의 정치인이다. 1907년 고향 경기도 양평에서 국채보상운동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해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했고,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광복이 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을 주도한 뒤,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부주석에 올랐다. 인민당을 결성해 당수직을 맡기도 했다. 김구, 이승만 등과 해방 공간 국가 건설 논의를 주도했고, 김규식, 김창숙 등과는 통일 정부 수립에 끝까지 힘을 다한 현대 정치사의 거목이다. 민족주의자이자 교육자였으며, 일제와 해방 공간을 오롯이 굳은 의지 하나로 헤쳐 온 몽양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탁월한 웅변가라는 칭송 뒤에 자리한 독설이었다.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동지들과 격론을 벌였고, 거친 입담과 공격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끝까지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면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고, 넘겼더라도 얼마 못 갈 것”이라는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오죽 말이 독했으면 말로 사람의 목을 벤다고 해서 몽양의 독설을 ‘언참言斬’이라고 했을까. 그런 몽양은 1947년 7월 19일 성북동에서 재미 조선사정협의회장 김용중을 만난 뒤 계동 집으로 가려고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다 극우파 한지근의 흉탄 2발을 맞았다. 급히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가 환갑을 지낸 이듬해였다. 몽양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정치인이 가장 피해야 할 일로 언참을 꼽았다.

흔하디 흔한 정치인의 언참
애석하게도 언참의 정치인은 숱하다. 먼저 공·사석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인격살인에 가까운 말을 일삼는 유형이 첫 번째다. 대개 자신이 원칙 있고, 노선이 분명한 정치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상대를 공격하는 데 독한 말이 동원된다. 어떤 정치인은 독설이 당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고, 차기 공천을 보장하는 수단쯤으로 여긴다. 선거철이 되면 독설은 수위를 넘는다. ‘프레임 전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사생결단 수준의 말이 난무하고, 독설의 정치인은선거 승리와 당을 위해 헌신한 정치인이 된다. 두 번째는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 같은 사석에서 없는 이야기, 확인 안 된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정치인이다. 주로 뒷담화나 개인 비리, 추문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확인해보면 자신이 들은 것 가운데 지극히 개인적 입장에서 재가공한 경우가 태반이고, 일부는 없는 얘기를 만들기까지 한다. 불행히도 이런 이야기는 고위 관계자의 말로 인용돼 기사화되기도 하고, 정보 보고를 통해 삽시간에 유포되기도 한다. 어떤 정치인은 아예 기사는 쓰지 말고, ‘살짝’ 보고만 하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곁들인다. 세 번째는 비아냥이나 조롱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정치를 잘한다고 믿는 부류다. 주로 훈련되지 않은 대변인들에게서 자주 목격된다. 의회 정치에서 상대의 약점이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특히 정책 대결에서의 촌철살인은 정책적 우위를 유권자에게 드러내는 정치의 본질적 행위다. 그러나 본질과는 무관한 단순 조롱과 비아냥의 반복은 처음 한두 번은 이목을 끌지 몰라도 결국 자신과 당의 품격만 떨어뜨리고, 정치가 국민에게 외면받는 원인만 될 뿐이다. 현실 정치에서 이런 3가지 유형의 언참은 복잡하게 혼재돼 있고, 항상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돼 있다.

기자란 말을 선택하는 직업
방송기자에게 누구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매일같이 떨어지는 제작 지시에 시청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조롱과 야유, 독설을 녹취로 골라야 할지, 아니면 다소 재미없더라도 사태의 본질을 짚는 적확한 녹취를 써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왜 하필 밥자리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짚어보고 확인한 뒤 기사에 인용하고, 정보 보고도 해야 한다. 나아가 공동체의 발전 대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분열과 분노의 말을 일삼는 정치인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고민을 멈추면 오답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부 기자의 운명이다. 정치는 말이고, 정치부 기자는 말을 선택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Posted in 2019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 정치보도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