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노트] 흑과 백

흑과 백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흑과 백의 선명함을 자양분 삼습니다. 어떤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극과 극의 대립이 그들의 목적인 듯싶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분노와 갈등, 심지어 야만의 바이러스를 퍼뜨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내세웁니다. 누군가 그를 맹렬히 비난하는 동안, 다른 한쪽 끝에선 공고한 결집이 이뤄진다는 점이 두렵습니다. 비난의 규모가 클수록 결집의 강도 또한 세집니다. 그렇게 흑백의 대비만 두드러질 때, 우리는 숱한 회색들을 시야에서 놓치고 맙니다.

  흑과 백 사이에는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은 회색들이 존재합니다. 덜 검은 색과 덜 하얀 색 사이, 까무잡잡한 색과 희끄무레한 색 사이, 짙은 회색과 옅은 회색 사이,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는 색들의 사이, 또 사이들의 사이…. 극단의 한계는 명백하고, 사이는 무한합니다. 극단은 자신의 존재만을 내세웁니다. 사이는 관계입니다. 흑이 아니면 백이라고만 말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소란함속에서도 건강한 시민들은 나와 내 주변을 돌아봅니다.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민주사회의 시민들은 각기 다른 회색입니다.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곧 극단의 영역이 줄어들고 사이의 영역이 커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야만의 시대에 절대자에 대한 복종 아니면 죽음만이 존재했다면, 문명이 진보하면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잇길이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권력을 견제할 수 있게 됐고 시스템에 의해 비판이 가능해졌습니다. 정치 영역의 상부 섹터에 몰려있던 힘이 각 부문의 시민 섹터로 분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거무튀튀하거나 희끗희끗해도 자신만의 색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른 색깔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 또한 깨달았습니다.
  다수의 동료 기자들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진영 논리를 걱정합니다. 이번 호의 테마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자문自問입니다. 그간 우리 뉴스가 균형을 이유로 흑 아니면 백을 말하는 이들에게만 마이크를 건넨 것은 아닌지. 중립을 명목으로 양 끝쪽에만 카메라를 향한 것은 아닌지. 객관을 지향한다며 다양한 회색들을 무시한 채 극단의 언어들을 따옴표 처리하는 일에 열중하지는 않았는지. 본분을 다하겠다는 우리의 뜻과는 별개로 갈등과 분노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닌지…. 이번 지면을 채워준 젊은 목소리들이,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질문의 실마리는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송형국 본지 편집위원장 (KBS)

Posted in 2019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편집자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