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회 뉴스부문_체육계 성폭력 연속보도_SBS 이경원 기자

빠른보도보다 옳은보도에 대한 고민

 

지난해 말,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를 성폭력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는 제보를 받게 됐습니다. 취재팀은 첫 보도를 하기 전까지 심석희 선수 변호인 측과 열흘에 가까운 조율 과정을 거쳤습니다. 보도의 파장이 클 걸로 예상된 데다, 혹시 모를 2차 피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낙종 가능성 보다 더 중요한 건 2차 피해를 차단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5차례가 넘는 자체 회의를 통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회람했고, 팩트 하나하나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다듬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 보도의 시작 가이드라인

 

취재팀의 보도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피해 당사자 인터뷰에 집착하지 않을 것.

2) ‘성폭행이란 표현을 최소화하고 성폭력으로 표현을 통일할 것.

3) 사건의 구체적인 일시, 장소, 범행수법은 쓰지 않을 것.

4) 개인의 사건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핵심임을 강조할 것.

 

당사자의 눈물 섞인 인터뷰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동정의 대상으로 비쳐져 사건의 본질을 흐릴 위험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심석희 선수 인터뷰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최초 보도는 심 선수가 아닌 심 선수 측 변호인 인터뷰로 갈음했습니다.

 

2차 피해의 단초를 없애기 위한 기술적 해법도 고민했습니다. ‘성폭행’이라는 구체어보다 ‘성폭력’이라는 포괄어가 피해자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체적인 날짜, 장소, 범행수법을 적시하는 것도 피해자에게 고통의 순간을 상기시켜, 2차 피해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선수 개인 문제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이 유명인의 성폭력 스캔들에 그쳐서는 안 됐습니다. 취재팀은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체육계 구조적 문제에 맞닿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스포츠에 몸담고 있는 선수들, 나아가 메달에 집착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 옳은보도에 대한 고민

 

저희가 이번 보도에서 보람을 느꼈던 건 단순히 사건의 1보를 전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보도 이튿날 정부가 대국민사과를 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성폭력 관련 보도를 어떻게 할지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실천했다는 점이 성과였음을 깨닫습니다. 심석희 선수 역시 변호인을 통해 체육계에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나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위와 같은 가이드라인은 심 선수의 뜻에 기초한 원칙이었습니다. SBS는 이번 보도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사내 백서로 만들어 향후 성폭력 보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Posted in 이달의 방송기자상,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작 취재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