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회 경제보도부문_재계 상속세 인하 주장 검증 연속보도_YTN 고한석 기자

상속세 내려라재계의 혹세무민을 고발하다

 

의도된 왜곡상속세 국제 비교 보고서

 

지난해 10월 한국경영자총협회 보고서 <국제 비교를 통해 본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제 현황 및 개선방안>은 상속세 인하 요구의 근거를 집대성한 자료입니다. 상속세 명목 최고 세율이 OECD 최상위여서 기업하려는 의지가 꺾이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국가별 총 세수 대비 상속세 비중 같은 각종 수치를 아주 자세히 열거합니다.

 

전문가 집단이 숫자로 쌓아 올린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세 통계를 뒤지고, OECD 자료 원문을 들여다보고, 기재부와 국세청, 세무사들을 취재해 수치를 일일이 확인하는 건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숫자의 출처를 찾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숫자들을 발견했습니다. 실제 상속세 낸 사람은 대상자의 3%에 불과하고, 적용된 세율은 17% 수준에 그쳤습니다. 2017년 6백억 원 이상 상속이 발생한 ‘슈퍼리치’ 9개 가문(?)의 상속세율 역시 평균 30%였습니다.

 

그렇다면 명목세율이 아니라 실효세율로 국제 비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죠. 하지만 OECD 자료와 학술 논문, 연구 기관 보고서들을 뒤져도 그런 자료는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세법이 나라마다 천차만별이고 복잡해서 사실상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경총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명목세율이라는 단편적인 사실만 보여주면서 상속세를 내려야 한다고 ‘혹세무민’한 셈입니다.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는 건 누구일까?

 

경총 보고서의 백미는 이른바 ‘눈물의 경영권 매각 사례’입니다. “상속세 낼 돈이 없어서 가업 승계를 포기했고, 회사가 투기 자본에 넘어가면서 기업가 정신은 훼손됐다!” 그 실례로 9개 기업을 들었습니다.

 

역시 검증 취재는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몇몇 창업주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창사 초기부터 일한 임직원들을 설득해 다수의 증언들을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 경총이 사례로 든 ‘눈물의 경영권 매각 사례’ 기업 9곳은 사실상 모두 상속세 부담이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지분 매각 원인은 경기 변화, 경영 판단 등 다양했습니다. 경총이 상속세 때문에 회사를 판 것처럼 매도한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창업주도 있었습니다.

 

재계는 항상 기업가 정신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정작 재계를 대표하는 경총이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고 있었습니다. 반쪽짜리 ‘팩트’로 포장된 상속세 인하 요구가 기업가 가운데서도 극소수 재벌을 위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특히 취재 과정에서 ‘상속세율 세계 최고’라는 주장과 ‘눈물의 경영권 매각 사례’를 확대 재생산하는 수많은 언론 기사를 접했습니다. 언론의 검증이 사라진 곳에 가짜 뉴스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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