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회 지역뉴스부문_5.18 최초 발포자가 국립현충원에_광주MBC 김인정 기자

보도자료에 숨어있던 진실을 추적하다

 

 

출발은 한 국회의원이 낸 보도자료였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진압했던 계엄군이 심의절차도 없이 국가유공자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계엄군 중 유공자가 된 사람은 73명이나 됐다. 보도자료에는 계엄군 중에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국립현충원에 안장돼있는 사람도 그중 5명이었다. 5.18 당시 군 역시 지도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 피해자라는 시각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국가유공자에 국립현충원 안장이라니 지나쳤다. 대체 그렇다면 어떤 인물들이 국립현충원에 안장이 돼있는 걸까? 그럴만한 인물들일까? 궁금했다. 보도자료는 거기에서 끝났지만 취재를 이어가야 한다는 직감이 왔다. 해당 의원실에 연락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5.18 당시 진압군이 누군지, 명단이 있는지 요청했다. 국가보훈처에서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명단이 완벽하지는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정보 때문에 초성으로만 공개해, 의원실 차원에서 국립현충원 안장자 명단 등과 대조해 명단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일단, 현재 만들어져있는 자료라도 줄 수 있는지, 중요한 인물이나 지휘부가 섞여있는지 물었다. 특별한 인물은 없는 것 같다는 답과 함께 다섯 명의 명단이 도착했다. 명단 안에 5.18의 최초 발포자의 이름이 보였다. 시민을 향해 첫 발포를 하고 고교생 부상자를 냈던 차 모 대위는 5.18을 자주 취재해온 지역기자에게는 잊기 힘든 이름이었다. 이 발포는 집단 발포보다 하루 앞선 것이었지만, 5.18에서 처음으로 총기가 등장하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또한 군 지휘부가 시민을 향해 처음으로 총을 들어 계엄군과 시민의 갈등을 격화시켰던, 책임을 크게 물어야 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차 대위는 현충원에 묻힐 만 했나. 차 대위가 숨진 경위를 취재했다. 군끼리의 오인사격이었다. 차 대위가 소속됐던 부대와 다른 부대가 오인 충돌해 서로를 쏴서 사상자를 냈다. 더구나 받았던 훈장의 공적조서를 확인했더니 시민이 쏜 총에 희생된 것처럼 조작돼 있었다. 시민을 쏜 사람이 시민에게 총을 맞아 죽은 것처럼 포장된 것이다. 죽음의 값이야 누구에게나 중하겠지만, 자국민을 향해 총을 쏜 군인이 순국선열을 기리는 국립현충원에 누워있다니,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껴졌다.

 

 

사실 이 주제는, 쭉 취재해왔던 주제였다. 첫 보도에 한참 앞선 지난해 11월, 국가보훈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당시 요구했던 자료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을 위해 투입된 군인 가운데 국가유공자 지정된 인원수와 명단, 국가유공자로 지정되게 된 근거 문서와 공적조서였다. 국가보훈처는 개인정보에 해당해 명단과 공적내용 등을 공개할 수 없다며 비공개 처분했다. 후속 보도를 위해서는 이 문서가 역시 필요했다. 최초 발포자가 국립 현충원에 안장됐다는 소식은 가해자가 국가유공자가 돼있는 모순을 분명하게 드러냈지만, 좀 더 나아간 취재를 위해서는 전상*공상 확인서나 보훈심사 문서들이 필요했다. 이때 앞서 보도자료를 냈던 국회의원실이 도움을 줬다. 기자가 찾던 문서들을 국가보훈처에서 제출받은 상태였던 것이다. 의원실에서 자료 일체를 제공 받아 단독 입수한 뒤, 전문가와 함께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계엄군의 전상 확인서 등이 다수 조작돼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80 년 당시 5월 24일에는 대규모 오인사격이 두 차례 일어났었는데, 이때 다친 사람들을 폭도의 기습으로 다쳤다고 왜곡하고 조작한 것이다. 특히 이중에는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할때 부하들에게 실탄을 나눠줬던 11공수부대 조 모 대령도 있었다. 오인사격 당시 오른팔을 잃은 것으로 꽤 알려져있는 이 인물의 ‘전상확인서’에는 “폭도의 기습으로 부상을 입었다”라고 조작돼 있었다. 그 역시 시민에게 총을 쐈던 인물이지만, 시민에게 총을 맞아 다쳤다고 포장된 것이다. 더구나 해당 부대는, 이 오인사격이 있고난 뒤 민간인들이 사는 마을에서 보복학살을 하고 민간인을 즉결처형하기도 했던 부대다. 이 부대의 지휘관이었던 그는, 군에서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이 서류가 인정되며 국가유공자가 됐다. 보훈심사가 도입된 뒤에도 심사는 허술했다. 시민군이 무장하기 전 총상을 입고도 시민군에게 총을 맞았다고 주장해 국가유공자가 된 사례도 확인했다. 또 놀랍게도, 최근인 2010년대까지 ‘광주사태’나 ‘폭도’라는 용어가 공문서에 등장하는 등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모두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몰역사적 인식을 보이고 있는 흔적도 서류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보도를 하고 있는 도중, 전두환 씨의 부인 이순자 씨는 자신의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황당한 망언을 했고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오래된 논란거리지만 계엄군 유공자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고, 전두환 씨의 국립현충원 안장이 현행법상 가능하다는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었다. 위의 모든 문제들을 시정하기 위한 법 개정은 현재 추진 중이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가 동석한 가운데 법률 개정을 위한 공청회도 열렸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 다 유공자로 인정하는 모순은 5.18에 대한 사법부 판단 뒤에도 입법조치가 미비해서 생긴 문제들이다. 오랫동안 방치돼온 문제를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봤다. 오월의 광주라는 국가폭력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에 대한 문제는 우리 사회 정의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이기도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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