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회 지역 기획보도부문_1945 이키섬_부서진 기억이 데려가는 곳_KBS청주 함영구 기자

<기록되지 않은 아픔을 찾아 떠난 여정>

 

 

광복 70여 년깊어가는 그리움

경상북도 군위군에 만난 김초연 할머니는 1925년 8월 1일 태어났습니다. 지난해 여름 김 할머니를 만났을 때의 연세가 94살, 새해를 넘기며 95살이 됐습니다.

 

할머니는 참 무뚝뚝했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다 들 그렇다지만, 연세가 많아 말이 줄어들었다지만 참 무심할 정도로 투박했습니다. 지난여름 최악의 무더위에 인각사라는 절에서 노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해 풀을 뽑고 계셨던 할머니의 모습은 이렇게 기억됩니다.

할머니는 17살이던 1943년 시집을 갔습니다. 그 이듬해 남편은 강제징용에 끌려갔습니다. 당시 그 지역 많은 사람들이 징용에 끌려갔고, 할머니의 남편도 그 중 한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여느 다른 부부들처럼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해를 넘기며 올해 75년이 됐습니다.

 

할머니 남편의 이름은 박00, 본인보다 4살이 많았고 1년 동안 같이 살다 아이까지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징용에 끌려갔던 남편에게서 해방이 되어 돌아온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은 여기까지였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모시 저고리를 만들어 오동나무 장롱 안에 넣어 두셨다는 것은 함께 살고 있던 딸로부터 들었습니다. 지금도 개 짖는 소리가 나면 대문을 가장 먼저 쳐다보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늘의 은하수가 흐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우리도 다시 만나자’는 편지를 몇 번이고 되새기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제야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되던 그 무렵이 은하수가 흐르던 칠석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김 할머니와 같은 수많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말하지 못한, 기록되지 않은 아픔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사무쳐가는 원한이 있습니다. 1945년 300여명이 숨진 이키섬 조난사고의 희생자와 그 유족이 그러하듯이.

 

선악의 공존 일본’…그리고 우리

제작진은 1945년 이키섬 조난사건의 모든 자료를 일본에 찾았습니다. 수백명, 수천명 희생자의 모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에 대한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만난 당시 72살의 ‘마사키’씨, 일본 이키섬 천덕사의 주지스님 ‘니시타니 도쿠도’씨.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취재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키섬 조난사건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일본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던 분들입니다. 조난 사건으로 숨진 유해를 발굴해 70여 년 동안 위령제를 올리고 유해를 보관해오기도 했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대한민국에서 존재 자체도 모르는 1945년 이키섬 조난사건에 관심을 갖고 희생자를 추모한 일본인들입니다. 제작진을 만나 ‘일본인이기에 과거의 반성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마사키’씨의 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직도 일본은 침략국가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해방 직후 양국의 한일협상으로 모든 책임이 끝났다는 입장입니다. 침략국가인 가해자가 아닌 원폭의 희생자라는 역설에 매몰돼 있습니다. 이 같은 암울한 일본 정부의 양심을 지켜주는 희미한 촛불이 바로 몇몇의 ‘마사키’씨며, ‘니시타니 도쿠도’ 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껏 무엇을 했나요? 우리 형제자매가 숨지고 가슴 아파 하고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동안, 대한해협 한 섬의 모래사장에서 우리 이웃의 살과 뼈가 썩어 사라지는 동안 우리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일본의 몇몇 사회운동가들이 유해를 발굴하고 위령비를 세우고 일본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동안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지금도 많이 늦었습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손발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기록되지 않은 아픔을 들춰내 밝히고 고증해 아픈 역사를 써내려가야 합니다.

 

더 이상 경북 군위에서 만난 김초연 할머니의 그리움이 원한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그것이 비록 좌절이나 또 다른 고통이 될 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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