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국방송기자대상_뉴미디어 부문_사라진 방화 – 화재 조사의 불편한 진실_YTN 함형건 기자

언론도 세상도 몰랐던 화재 조사 체계의 속살

YTN 함형건 기자

  “문제가 사실 참 많아요. 그런데 나서서 말하려고 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죠. 개별 화재의 원인도 잘 모르면, 제대로 된 예방 대책이 나오겠습니까?”   (전문가 000 씨)

  취재 초기 도움말을 구하려 전화한 기자에게 전문가는 열변을 토했지만, 막상 본격 취재와 분석에 들어가자 연락을 끊어 버렸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취재가 끝날 때까지 기자의 전화와 문자에 거의 답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저널리즘도 관련 영역의 배경지식이 중요한 법.  처음에는 잘 아는 소재라고 생각했던 화재 문제가 파면 팔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허심탄회하게 조언을 줄 전문가도 의외로 많지는 않은 편이었습니다. 관련 시민단체 하나 없었고, 당국의 비공개 결정으로 화재 주소와 화재 개요를 담은 로데이터 전체를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머신러닝 활용하기: 데이터 분석은 취재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 제한된 형태로 받은 수십만 건의 화재 로데이터를 토대로 조금씩 분석을 시작했습니다. 기자는 일단 지난 10년 동안 소방 데이터 상의 국내 방화가 급격히 줄어든 사실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방화비율이 크게 떨어진 소방서 구역의 화재를 골라 어떻게 원인 조사가 이뤄졌는지 이면을 들여다 보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문헌으로 상세하게 살펴보기에는 화재 건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때 기자의 머리에 떠오른게 머신러닝이었습니다. 일종의 분류기인데, 컴퓨터를 200여 곳 소방서의 화재 데이터로 학습시켜서, ‘똑똑하게 만든 뒤’,  방화일 가능성이 높은 화재를 분류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머신러닝으로, 방화비율이 크게 떨어진 소방서의 데이터 중에 당국은 방화로 분류하지 않았지만, 컴퓨터는 방화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 화재를 골라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방화 의혹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조사가 끝난 것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화재’ 후보 100여 건을 추려냈습니다.
  사실 머신러닝 분석은 취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소수의 전문가와 현직 조사관들의 조언도 다시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의 분류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화재 현장 조사서를 정보공개청구해서 석연치 않은 점은 없는지 그 내용을 현직 조사관과 함께 검토했습니다. 이렇게 1차로 화재조사체계의 미비점을 보여주는 24건의 ‘수상한 화재’를 선별할 수 있었습니다.

 

정보공개청구로 해부한 화재 조사체계의 불편한 진실

  그다음 단계로는 경찰의 수사 실태도 파악해야 했는데, 이 일 역시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소방과 경찰의 데이터베이스가 전혀 연계되어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난관이었습니다. 소방서에서 조사한 특정 화재에 대해 해당 구역의 일선 경찰서들에 수사 내역을 문의하면, “그런 화재 사건에 대한 기록이 없다.”, “수사한 적이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정보공개청구로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그 내용을 토대로 추가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교차 확인하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기를 수백 번,   “우리가 왜 수사 내역을 제공해야 하느냐”는 여러 일선 경찰서 측의 짜증 섞인 반응을 듣기 다반사였습니다.
다행히 취재를 시작할 당시는 1인팀 이었지만 몇 달씩의 분석과 취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후배 기자가 합류하면서 취재와 리포트 제작,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데이터저널리즘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외부 개발업체와 협업해 ‘사라진 방화 : 화재 조사의 불편한 진실’ 사이트(http://dataj.ytn.co.kr/arson)도 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방화 의심 사건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는 실태와 소방과 경찰간의 공조 미비, 범죄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사 종결하기도 하는 경찰의 방화 수사 내역. 단락흔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전기 화재 수사의 함정 등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줄줄이 파헤치고 관련 콘텐츠를 방송 리포트와 인터넷 기사, ‘사라진 방화’ 사이트를 통해 각각 공개했습니다.

 

   아직도 기자의 PC에는 현실적인 여건상 기사에 채 반영하지 못한 적지 않은 관련 데이터와 분석 작업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아쉬움이 남지만, 이후의 다른 아이템에 다시 활용할 방법을 찾을 생각입니다. 데이터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개시할 때마다 우리가 몰랐던 진실을 캐기 위해 열정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기사가 마무리될 때쯤에는 부족한 점과 더 배워야 할 점을 끝도 없이 발견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도를 위해 힘을 보태준 많은 분께 더욱더 입체적이고 예리한 보도로 답하겠다는 말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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