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국방송기자대상_경제보도 부문_보험의 배신_뉴스타파 오대양 기자

당신의 보험은 안녕하십니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오대양 기자

  시작은 사람이었다.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했지만 오히려 보험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을 내고도 피해를 본다는 기묘한 역설이 기자의 걸음을 이끌었다. 들여다본 보험의 문제에는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구조의 문제가 있었다. 온 국민이 보험 3~4개씩 가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감시는 허술했다.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보험의 ‘A to Z’에 질문을 던졌다. 연신 보장 금액을 외쳐대는 보험 광고처럼 보험금은 약속대로 나오는 걸까? 복잡한 보장 조건 속에 보험소비자들은 알지 못하는 ‘보험의 배신’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취재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기울어진 보험의 운동장

  매년 5만 명의 보험소비자들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한다. 이 중 2만 명은 분쟁 조정을 신청하고, 1만 명은 소송으로 간다.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여 온전한 승리를 거둘 확률은 8%에 불과하다. 대개는 수년씩 걸리는 보험금 분쟁을 견디지 못하고 마지못해 보험사의 합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보험사와 싸우는 보험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법대로, 약관대로 보험금을 달라는 소비자들의 주장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등 돌리기 힘든 딱한 사연을 마주칠 때도 많았다. 병보다 보험 때문에 더 힘들다는 환자, 수년째 보험사와의 소송으로 법원을 드나드는 민원인, 억울하게 보험사기범에 몰렸다가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 이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차라리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으면 겪지 않았을 일이라는 것이다.
  법과 약관에 근거하지 않은 부지급의 ‘꼼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오히려 보험사 쪽이었다. 계리와 법에 대한 막강한 지식을 갖추고 보험금 부지급의 논리를 만들어 내는 데 안간힘이다. 소비자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모호한 약관은 유지하면서, 소송을 통해 자신에 유리한 판례를 만드는 식이다.  보험소비자가 정당하게 받은 진단서의 내용을 무력화하고 보험사에 유리한 별도의 진단서를 받아 보험금을 부지급하는 이른바 ‘보험사 자문의’ 문제는 꼼수의 백미다. 한 보험사가 허위 내용을 담은 익명의 진단서를 사용해 보험금을 부지급한 사실이 이번 취재 과정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9개월 장기 취재를 견인한 변화들

  취재가 장기간 진행되자 보험사는 아예 입을 닫았다. 반론을 요청해도 노코멘트가 돌아오기 일쑤였다. 업계 차원에서 뉴스타파의 연속 보도를 보이콧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말 없는 상대를 취재하며 제작에 곤란을 겪었다. 인터뷰와 자료화면 촬영 요청이 수차례 거부당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9개월의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 덕분이었다. 보도 이후 대여섯이 모이던 금감원 앞 집회는 수백 명 규모로 커졌다. 금감원은 이들의 민원을 재검토했고, 일부는 부지급된 보험금을 돌려받았다. 보험사로부터 해촉을 당한 보험설계사들은 투쟁 끝에 복직을 약속받았다. 자문의와 보험 사기 문제에 대해서는 보완 입법이 추진 중이다.
  손 큰 광고주, 보험업계의 입김 없이 꾸준히 보험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진실의 수호자’ 뉴스타파의 후원회원 덕분이다. 장기간 한 아이템에 매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묵묵히 굳은 일을 맡아준 동료들이 있었다. 손을 거들었을 뿐, 사실 이 결과물에는 그들의 몫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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