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팔루 지진 해일 취재 현장] 나의 인도네시아 재난 취재기

나의 인도네시아 재난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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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우기자

 

 

 

 

주말에 걸려오는 데스크의 전화는 늘 부담스럽다. 평화롭던 9월 마지막 주말. 전화가 울렸고 난 그 전화를 받았다. 팔루? 빠루? 빨루? 발음하기에도 생소한 인도네시아의 작은 해안 도시에서 지진 해일이 발생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내가, 자카르타 공항에서 현지 코디를 기다리고 있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무슨 정신으로 출장 준비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급하게 짐을 싸고 회사에서 끊어준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인도네시아 출장길에 올랐다. 가장 기본적인 예방접종을 할 시간도 없었다. 피난민처럼 짐을 이고 얹고 도착한 인도네시아. 취재는 공항에서부터 쉽지 않았다. 저녁 8시 30분. 우선 급하게 9시 뉴스 연결을 위해 MNG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공항 경비들이 막아서기 시작했다. 사전에 섭외를 마쳤으나, 주간조가 야간조와 교대하면서 인수인계가 이뤄지지 않았단다. 어찌 됐든 9시까지는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취재장비를 챙겨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순간 회사의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고성이 오가고 전화기를 붙잡고 있을 선배들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하늘이 노래졌다. 결국 리포트가 몇 번이나 밀린 끝에 공항 귀퉁이에 숨어서 겨우 연결했다. 하지만 현장 연결은 중간에 끊겨버렸고 방송은 매끄럽지 못했다. 남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 아니 그냥 상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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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Palu에서…
  다음날 우리가 제일 먼저 접한 건 팔루 공항이 폐쇄됐다는 소식이었다. 공항이 다시 열리고 닫힌다는 소문에 비행기 예매만 4번. 우리는 차라리 일단 현장 팔루에서 가까운 마무주Mamuju로 넘어간 뒤, 차를 이용해 팔루로 이동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 경험이 많은 베테랑 코디도 처음 방문해 본다는 술라웨시Sulawesi 섬. 마무주에서 9시 뉴스 연결을 하자마자 다시 짐을 쌌다. 풍찬노숙과 차에서 자기를 8시간.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재난 지역인 팔루가 가까워지는 것을 짐작했다. 팔루 상황은 심각했다. 도심에 접근할수록 팔루를 빠져나가려는 피난민들이 뒤엉켜 난장판이었다. 여진이 있었고 통신 시설도 복구가 안 돼 외부와의 연결이 어려운 실정. 팔루 지방정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시장과 부시장도 지진으로 숨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지진으로 파괴된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탈옥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한마디로 팔루는 난장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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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를 나오며
  쓰나미와 지진 피해를 함께 본 팔루에서는 큰 피해만큼이나 취재할 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급하게 오느라 취재 준비만 했지, 취재지원 준비는 못 한 채 서울을 떠났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취재지원이 취재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다. 재난 지역으로 가는 데만 급급했기에 예견된 상황이었다. 취재하는데 쏟는 시간보다 숙식과 통신을 할 수 있는 송출 장소를 찾는 일에 시간을 더 쏟았으니 말이다. 잘 곳도 씻을 곳도 먹을 것도 없는 최악의 상황. 결국, 현지에서 기본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팔루를 빠져나가기로 했다.
  팔루를 빠져나오며 내가 그린 팔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어머니와 파괴된 집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팔루를 불행한 지역으로만 그리려 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불행한 뉴스를 통해 팔루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고 한국에 있는 시청자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만난 팔루 사람들은 분명 웃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나는 왜 그들이 웃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습관적으로 뉴스에서 재난 피해자들 소비하던 방식으로 불쌍하게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득 첫날 공항에서 취재를 방해하던 한 인도네시아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

Posted in 2019년 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