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 ‘신입기자’] 한 마디가 간절한 지금 마음으로

한 마디가 간절한 지금 마음으로

방송기자 1, 2월호_특집_새로운 사람 신입기자_사진메인

 

 

 

 

 

 

 

 

 

 

한소희기자

 

 

 

 

  “폭행 사건 말씀하셨잖아요. 영상이 저희 쪽 CCTV에 찍혀서… 오시면…” 이보다 반가운 전화가 또 있을까. 몇 시간을 설득하고, 빌고, 영업을 방해하지 말라는 얘기까지 들으며 기다려 봐도 보여줄 수 없다던 CCTV 영상. 그 CCTV 원본 영상을 제공하겠다는 전화였다.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나 궁금해 영상을 확인해보니, 폭행이 생각보다 심각해 연락했다고 했다. “손님 보호 때문에 안 된다”, “확인하려면 보안업체 본사에 연락해야 해서 어렵다”, “형사도 아
닌데 왜 보여줘야 하나”, “사장이 안 된다 했다”, “바쁘다” 등 거절할 땐 수많은 이유가 붙었다. 하지만, CCTV를 내어줄 땐 ‘피해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단 하나의 이유가 전부였다. 취재원 역시 마음을 열고 말하거나 자료를 줄 때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라는 마음일테다. 수만 가지 얕은수보다 진심 어린 태도가 기자에게 먼저여야 한다는 걸 CCTV를 찾을 때마다, 사건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취재원을 만날 때마다 배운다.

진심으로 설득하기
  ‘청와대 경호처 5급 공무원 폭행 사건’을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취한 청와대 소속 공무원이 술자리에서 만난 일반 시민을 폭행해 코뼈를 부러뜨리고 난동을 부렸다. 취재 당시, 피해자는 수술을 마친지 얼마 안 돼 물 한 잔도 못 마신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피해자 가족은 해가 될까, 피해자 인터뷰 자체를 반대했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 먼저였다. 기사 하나 쓴 적 없고, 명함조차 없는 수습기자가 피해자에게 신뢰를 주려면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야 했다. 선배 명함과 내 회사 출입증을 보여주고, 피해 안 가게 잘 보도할 수 있다는 약속도 했다. 또 피해자 가족보다 먼저 수술을 마친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바로 찾아가지 않고 기다렸다. 피해자 혼자 있는 병실에 먼저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피해자 가족의 당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설득은 솔직하게 했다. 공무원의 무차별 폭행, 특히 청와대 경호처 소속 공무원의 폭행은 사안이 심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꼭 보도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병실 밖에서 기다렸다. 정말 숨 막히게 길게 느껴지는 기다림 끝에 피해자는 인터뷰하기로 했다. 이런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건네준 피해자 제공 영상엔 “내가 누군지 아냐”라고 소리치는 청와대 경호처 공무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귀동냥꾼에서 기자로
  ‘귀동냥꾼 기자가 되고 싶다’ 입사 전 자기소개서에 적은 문장이다.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찾아가 이야기를 듣겠다’라는 것이었다. ‘마와리’를 도는 수습기자는 귀동냥꾼 그 자체였다. CCTV를 구할 때도, 청와대 공무원 폭행 피해자를 만나서도, 매일 가는 경찰서에서도 늘 이야기 에 목말라 있으니. 귀동냥꾼의 마음가짐은 ‘기자’로 취재할 때 방해되기도 했다. 맘 카페에서 퍼진 유언비어로 어린이집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그 교사의 실명을 유출한 혐의로 입건됐다.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어린이집을 찾아갔다.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기사에서 어린이집 교사의 실명을 유출했다고 지목된 어린이집 관계자는 학부모에게 직접 교사의 이름을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억울할 만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귀동냥꾼의 마음가짐이 발동해 함께 입건된 다른 학부모 입장까지 한참을 들었다. 문제는 듣고 난 후였다. 시간은 시간대로 썼는데, “그래서 어린이집이 실명 확인해줬대, 안 해줬대?”라는 선배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해주는 이야기를 그저 듣는 귀동냥꾼이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이야기를 먼저 끌어내는 기자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신입 기자로 시작하기에 앞서 귀동냥 이야기를 꺼낸 건 무뎌질 수도 있는 초심 때문이다. 한 마디, 한 마디에 고마워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처음 마음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마음을 다하면 입은 열린다는 믿음을 가진 기자가 되고 싶다. 아직 살얼음판 같은 수습 기간이 남아 있다. 무사히 마치고 기사를 쓸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다시 한 번 이야기해준 감사한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지금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Posted in 2019년 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툭집 새출발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