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얼굴 ‘KBS 뉴스9의 새 앵커’] 9시 뉴스, 옳은 습관의 길

9시 뉴스, 옳은 습관의 길

2019년 1,2월호 특집1 KBS

 

 

 

 

 

 

 

 

 

 

 

엄경철앵커

 

 

 

 

  2019년 9시 뉴스가, KBS 뉴스가 달라진다는 홍보영상이 TV를 통해 나가는 것을 보면 얼굴이 조금 붉어집니다. 뉴스가 어떻게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겠습니까.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와 생산구조는 그대로인데 뉴스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형식에 변화를 주고 앵커를 바꿨으니 조금 달라진 느낌은 들겠지만 결국 뉴스는 뉴스일 뿐이죠. 내용이 달라져야 진정 달라졌다고 체감할텐데뉴스는 현실의 종속변수여서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창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새롭게 9시 뉴스를 진행해야 하는 앵커로서 대략 난감할 뿐입니다.
  ‘세월호’,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상징되던 KBS 뉴스의 어두운 시절을 다시 끄집어내, 새롭지도 않은 다짐을 다시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해야 할 뉴스는 당연히 해야 할 뿐이죠. 그런데 당연히 해야 할 뉴스의 영역도 지상파 3사와 뉴스 전문 채널, 종편까지 가세한 무한 경쟁에 돌입해있습니다. 10년 전 KBS만이 특별하게 잘하는 탐사보도 영역이 있었으나 이미 다른 언론사들도 상향평준화돼버렸습니다. 특별하게 한 언론사만 잘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KBS 뉴스가 과거에 잠시 누리던 신뢰와 영향력을 되찾는 것은 오랜 시간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KBS 뉴스에 주어진 숙제부터 챙겨보죠. 책상 위에 보고서가 한 장 놓여있습니다. ‘지상파 메인 뉴스와 jtbc 뉴스룸 특징 비교’. 보고서가 분석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오래 보아 익숙한, 자극적이지 않은, 전통적인 저녁 9시 편성…”이라는 표현이 ‘긍정 인식’이라는 항목에 모여 있습니다. 진정 ‘긍정 인식’인지 긍정되지 않습니다. ‘부정 인식’ 항목에는 “정권 친화적, 신뢰가 안 감, 딱딱하고 지루함, 고착화된 진행과 연출…”이라는 날 선 언어가 눈을 찌릅니다. 오랜 나태함과 구조적 정파성을 질타하는 표현들이 쉽게 씻겨나가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KBS 뉴스의 한계 그리고 뉴스의 한계
  좀 더 근본적인 질문도 필요해 보입니다. 뉴스의 한계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사실을 다루는 뉴스는 인간 세계의 진면목, 진실에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초년병 시설, 밥줄로서 기자라는 직업을 감당하던 때에도, 뉴스의 사회적 기능과 기여를 고민하는 고참이 되어서도 내내 그 생각은 떠나지 않습니다. 물론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바꾼 대특종의 목록, ‘박종철 고문치사 폭로’, ‘최순실 국정 농단 태블릿PC 보도’를 떠올리면, 쓸데없는 생각 말고 취재나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려나 이 질문은 사실에 대한 질문입니다.
  문헌적, 인물적 권위를 빌려보겠습니다.

“사실이란 우리 믿음이 존재하는 세계로는 들어오지 못하며, 사실은 믿음을 낳게 한 적이 없지만, 파괴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믿음을 거부할 수는 있어도 믿음을 약화하지는 못한다.”(잃어버린세계를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매스컴은 反 커뮤니케이션이다. 인간의 모든 것을 부끄럼 없이 말하는, 어떻게 보면 좀 무정할정도로 정직한 의사소통의 전형인 문학은 따라서, 진실을 알려야 할 상황을 무화無化시키고 있는 매스컴에 대한 강력한 항체로서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황지우)

  사실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저널리즘의 태도를 위한 주춧돌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의 집합체인 기사, 뉴스는 실상 세상의 총체적 진실의 100분의 1도, 1,000분의 1도 조명하지 못할 수있다는 한계에 대한 자각입니다. 그 자각이 겸손함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부단히 더 깊은, 더 넓은 사실을 끌어모으고 동시에 지금, 이 순간만이 아니라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진실을 규명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촉구합니다. 언론은 오랫동안 권위적이었고 지금도 상당 부분 그렇습니다. 단정적 언어로 규정짓고 꾸짖고 가르치려는 습성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지금 같은 정보의 흐름과 시민의수준을 생각하면 가당치 않은 일이죠.

앵커의 관점, 습관의 믿음
  그렇다고 딱히 새로운 출발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주어진 역할,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앵커가 해야 할, 앵커에게 주어진 역할은 올바른 저널리즘의 관점에 입각해 뉴스를 진행하는 것이겠죠. 기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 뉴스의 신뢰도와 영향력을 높이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이때 필요한 저널리즘의 관점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 평등, 인권 등 헌법적 가치에 대한 뉴스 지향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강자에 대한 견제 등일 것입니다.
  KBS 9시 뉴스 본방송 시청률은 여전히 높습니다. 시청자들이 9시 뉴스를 보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습관’이라고 합니다. 제 의견이 아니라 분석된 보고서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약간 모욕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렇게 믿게 하는 것은 습관이다. 수많은 기독교도를 만드는 것도 습관이다. 터키인, 이교도, 군인을 만드는 것도 습관이다. 습관의 믿음을 획득해야 한다.” (팡세/파스칼)

  습관적으로 9시 뉴스를 보는 시청자에게 시간이 지나서도 그게 좋은 습관이었다는 느낌, 옳은 습관이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 새로 9시 뉴스를 시작하는 앵커로서 갖는 희망입니다.

Posted in 2019년 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툭집 새출발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