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회 뉴미디어부문_사라진 방화-화재 조사의 불편한 진실_YTN 함형건 기자

우리가 몰랐던 화재 조사의 불편한 진실

 

화재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의 접근 방식은 오랜 세월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불이 난 직후에는 소방대원의 설명을 듣고 기사를 씁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경찰의 수사 결과를 쫓아가고, 나중에는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받아 적어 보도합니다. 현장의 관련자나 민간 전문가 의견을 듣기도 하지만, 화재 원인에 관한 수사 당국의 발표 내용은 대부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과연 그 모든 게 진실일까요?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취재는 소방청이 보유한 지난 10여 년간의 화재 데이터 40만 여 건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분석해보니 2006년에는 전체 화재의 10% 정도가 방화 (방화+방화의심 화재)로 분류됐던 반면, 최근에는 2%로 하락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0여 년간 전국에 걸쳐 꾸준히 진행된 현상이었습니다.그렇다면 방화 범죄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조사가 부실한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기자는 방화 비율이 가장 많이 떨어진 소방서 구역을 골라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6개 구역의 2년 치 화재만을 대상으로 했는데 무려 2700여 건에 달했습니다. 자료 분석을 담당한 기자 1명이 이 화재들의 자세한 내용을 전수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머신러닝으로 방화 의심 사건을 추적하기>

 

대신 머신러닝 분석을 활용했습니다.랜덤 포레스트라는 알고리즘을 썼는데,무엇으로 불이 붙었는지, 처음에 불이 붙은 재료는 무엇인지, 피해는 얼마나 발생했는지, 불이 난 시각은 몇 시인지 등등의 갖가지 변수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기자가 화재 조사의 전문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아니어도, 컴퓨터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확률 통계적으로 답을 찾아가는

‘의사 결정 나무’ 기반의 알고리즘입니다. R의 패키지를 활용하면 알고리즘의 모든 것을 코딩할 필요는 없지만, 분석을 위한 데이터 전처리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기자는 어떤 경우에 방화일 확률이 높은지를 수만 건의 데이터로 컴퓨터를 학습시킨 뒤. 이렇게 만든 예측 모델을 6개 구역의 2년 치 화재에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소방서는 방화로 판정 안 했지만 컴퓨터는 방화 가능성이 있다고 본 화재를 추려낼 수 있었습니다.

 

 

<취재 그리고 검토…문서 더미와의 싸움>

 

문제는 이렇게 도출된 분석 결과에도 충분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화재 현장 조사서와 화재 감정서 등을 정보공개청구해 입수한 다음 전문가와 함께 검토했습니다. 경찰의 내사 결과 보고서를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관련 문헌 입수와 경찰 취재는 머신러닝 분석보다

몇 배 시간이 더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이렇게 2단계, 3단계 검토 과정을 거쳐 ‘수상한 화재’ 24건을 추려 공개했습니다.

 

그중에는 부근 CCTV에 여러 번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포착됐지만, 끝내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고, 내사 종결된 화재 사건부터, 부실한 화재 감식으로 서둘러 수사가 마무리된 사건 등 다양한 ‘수상한 화재’가 포함됐습니다.

 

수사권을 쥐고 있는 경찰의 수사 실태를 여러 차례에 걸친 정보공개청구 끝에 확인해보니, 우리가 몰랐던 화재 수사의 이면이 더 드러났습니다. 소방서는 방화로 판정해 통보했지만, 경찰은 아예 조사하지 않거나 내사 종결한 화재도 적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이 과정에서 전선이 녹아 끊어진 흔적 즉 ‘단락흔’이 종종 내사종결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화재 조사와 수사 체계에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일어난 연쇄 살인범 강호순 방화 사건을 기억합니다. 끔찍한 방화 살인이었음이, 드러난 것은 화재 발생 뒤 한참 뒤였습니다. 화재 수사에서는 모기향으로 일어난 불이라고 엉터리 판정을 했습니다. 그 뒤에 일어난 부녀자 연쇄 살인의 예고편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때도 소방과 경찰, 국과수가 모두 참여한 합동 조사였습니다. 2017년 12월에 광주에서 발생한 3남매 사망 화재 역시 아이 엄마의 방화 혐의를 제대로 입증해내지 못해 경찰이 망신을 당했습니다. 화재 조사와 수사 체계의 허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몰랐던 등잔 밑의 그림자. 화재 조사 체계의 허점을 메우고 개선해가는 책임은

국가뿐 아니라, 시민사회, 학계, 언론 모두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끝으로 ‘사라진 방화’ 취재와 관련 사이트 제작 과정에서 함께 고생하면서 큰 도움을 준 이승배 기자와, 분석 과정에서 줄곧 힘이 되어준 전문가 여러분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Posted in 이달의 방송기자상, 이달의 방송기자상 수상작 취재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