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회 지역 기획보도부문_여순사건 70년 특별기획-낙인_KBS순천 양창희 기자

70년 동안의 눈물치유 위한 첫걸음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노인들은 인터뷰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희끄무레한 머리칼, 굵은 주름살 사이로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얼굴도 모른 채 잃어버린 부모를 떠올리며,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 짓눌려 온 삶을 꺼내 놓으며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들은 통곡했다. 마치 누가 물어봐주기를 기다린 것처럼 유족들은 울음 속에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나하나 구구절절한 사연이었다. 저마다 경험한 비극의 모습은 조금씩 달랐지만, 여순사건의 상처가 한 사람의 인생을 관통하며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는 점은 같았다.

 

유족들의 눈물은 ‘여순사건 70년 특집 다큐멘터리 <낙인>’을 만드는 내내 제작진을 따라다녔다.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살아갈까. 70년 전 여순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대부분 갓난아기였던 유족들이 왜 이토록 여순사건의 아픔에 시달려야만 했을까.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들의 상처는 왜 아물지 않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의문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서라도 이제껏 조명을 받지 못한 여순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파헤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체적 진실을 입증할 만한 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군인과 경찰, 피해자들도 대부분 사망한 이후였다. 그러나 누가 관심 갖지 않더라도 여순사건을 꾸준히 연구해 온 연구자들이 있었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료를 모으고 기록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열과 성을 다해 도움을 주신 이들 덕분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내용을 보도할 수 있었다. 여순사건 진압 군인들의 증언록을 최초로 발굴했고, 유족들의 트라우마 양상을 심층 면접 방식으로 조사했으며, 이승만 정부가 여순사건을 반공 국가의 형성에 이용하며 유족들이 평생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서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프로그램을 본 유족들은 하나같이 ‘한을 풀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렇게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아픔을 알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바뀐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낙인>은 과연 여순사건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충분했을까. 여전히 유족들이 간절히 원하는 특별법 제정까지는 첩첩산중이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여순사건을 ‘반란’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언론이 70년 동안 유예한 역할을 다 하기에 <낙인>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미흡한 프로그램에 ‘이달의 방송기자상’이라는 큰 상을 준 것은 앞으로도 갈 길이 먼 여순사건의 해결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지역 언론과 공영방송의 책무를 제대로 다하라는 주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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