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릴레이] 언젠가 하고픈 요리

[만만한 릴레이]

언젠가 하고픈 요리

MBC 이정은 통일외교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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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장고에 단술있다.” 대구에 있는 친정에 가면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이다. 경상도에선 식혜를 ‘단술’이라고 한다. 밥과 엿기름을 몇 시간동안 달여 만드는 달달한 별미. 한겨울 출산 후 따뜻한 물로 양치하라는 잔소리를 들을 때도 먹겠다고 덤빌 만큼 좋아하지만 시중 제품들은 내 입엔 너무 달아 결코 사 먹지 않는다. 내가 친정에 가거나 엄마가 우리 집에 와야 먹을 수 있기에 단술은 나에겐 몇 달에 한 번 엄마의 존재를 확인하는 음식이다. 엄마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영 배우게 되질 않는다. (요리하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인데도 말이다) “엄마 아니면 내가 어디서 단술을 먹겠어.” 삼남매 맏이라 늘 ‘참아라,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았던 나로선 유일하게 엄마에게 부리는 응석이다.

 

엄마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식혜

  내가 결코 단술을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엄마 역시 좋아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요리가 있다.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오구락지’, 표준어로는 ‘무말랭이 무침’이다. 외할머니가 시골집 앞마당에서 말린 무를 마른 고춧잎과 함께 빨간 양념에 무쳐내는 밑반찬이다. 매콤하지만 맵지 않고 달달하지만 반찬의 역할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딱 적당해서 양념에 밥을 비벼먹기도 했다. 무말랭이는 너무 마르면 딱딱해서 턱이 아픈데 외할머니가 내놓은 무말랭이는 본인이 씹을 정도로 적당히 꼬들꼬들했다. 2015년, 내가 결혼하자 “너도 이제 살림을 하니 한 통 받을 자격이 있지”라며 유리병에 무말랭이 무침을 가득 담아주시자 막내 이모가 “이걸 정은이 한테 준다고?”라며 살짝 시샘하던 게 생각난다. 외할머니는 지난 7월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친정엄마는 외할머니 건강이 나빠진 작년부터 무말랭이 무침을 해보려 무던히 노력했지만 똑같이 재현해내진 못하셨다. 왜인지 알 순 없지만 아무리해도 안 되더란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무말랭이 무침은 우리 가족의 혀끝에만 남아있는, 이제 이 세상엔 없는 맛이 돼버렸다.

 

혀끝에만 남은 외할머니표 반찬

  이제 22개월이 된 아들은 생선을 참 좋아한다. 나는 내륙 사람인지라 집에서 생선 냄새 나는걸 용납하지 않았는데 이제 매일 갈치니 고등어니 굽고 있다. 육고기는 한우를 칼로 다져
고기완자를 만들어줘도 먹질 않고 아주 비싼 등심 구이 정도만 겨우 먹으니, 매일 단백질을 먹이기엔 생선만한 게 없다. 우연히 식당에서 간장으로 살짝 간을 한 가자미 찜을 맛본 아들
은 손바닥만 한 가자미 한 마리를 앉은 자리에서 먹었다. 그래서 첫 생일상을 근사하게 차려주겠다며 가자미 찜을 시도했는데 그다지 열광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나름 요리 실력을 자부하는 터라 자존심이 상했다고 할까. 곧 아들의 두 돌이 돌아온다. 이번엔 제대로 된 생선찜 하나를 해주고 싶은데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엄마’하면 바로 생각나는 식혜나 물김치, 우리 엄마가 ‘외할머니’하면 생각나는 무말랭이 무침처럼 내 아들에게도 ‘엄마’하면 바로 생각나는 요리가 생기면 좋겠다. ‘우리’ 엄마만 할 수 있는 대체불가능 한 요리 말이다. 1차 도전 요리는 생선찜이다! 그리고 언젠가 식혜도, 무말랭이 무침도 성공해서 아들에게 “엄마는 이런 음식을 먹으며 자랐단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주자로 MBN의 오지예 기자를 지목한다. 오지예 기자의 ‘출산 후 먹고 싶은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만만한 릴레이’는 필자가 다음 필자와 주제를 지목하고, 이를 릴레이로 이어가는 「방송기자」의 새 코너입니다.

Posted in 2018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만만한 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