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지진 발생] 휴가지에 덮친 규모 7의 지진, 홋카이도 고립기

[홋카이도 지진 발생]

휴가지에 덮친 규모 7의 지진, 홋카이도 고립기

현장03_홋카이도 고립기_유지향 기자_사진1

 

 

 

 

 

 

 

 

 

 

유지향기자

 

 

 

 

 

  새벽 3시쯤, 건물 외벽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금방이라도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지난 9월 6일 내가 있었던 곳은 일본 홋카이도 노보리베츠, 여름휴가 차였다. 홋카이도는 일본 열도에서 지진 청정지역으로 알려진 곳이었지만 그날 새벽 규모 6.7, 최대 규모 7의 강진이 엄습했다. 지역 주민들도 이 같은 지진은 생애 처음이라고 했다.
사방은 암흑천지였고 건물을 뒤흔드는 여진은 수십 차례 계속됐다. 대한민국 70% 크기의 넓은 땅, 295만 가구가 사는 홋카이도 전역이 전기가 나갔다. 블랙아웃, 진원지震源地 아쓰마초 인근에 홋카이도 최대 화력발전소가 자리해 초유의 정전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동이 트자 호텔 프런트에 내려와 상황을 확인했다. 당장 오늘 자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관광객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홋카이도의 관문이자 유일한 국제선, 신치토세 공항이 폐쇄된 거다. 또 신칸센 등 모든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주요 고속도로의 통행까지 금지됐다. 그야말로 발이묶였다. 완전한 전력 공급에는 일주일 이상 걸리는데, 그사이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오리라는 발표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너도나도 뉴스를 찾았다. 전원이 끊겨 TV는 나오지 않았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진원지에서는 산자락이 무너져 마을 하나가 하루 사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소식에 모두 말을 잃었다. 홋카이도 전역에서 최소 40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부상자는 3백 명을 넘었다.

  내가 예약한 귀국 항공편은 이틀 뒤, 휴가의 후반부는 고립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가 되어버렸다. 나처럼 여행으로 홋카이도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만 4천여 명에 달했다. 당시엔 외교부 출입이었더라, 문자 메시지로 관광객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 정보 등이 전달됐다. 일본 여행 인터넷 카페 사용자들의 단체 SNS 채팅방이 개설돼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았다.

   회사에서는 일본 도쿄 특파원이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홋카이도로 향하고 있었고, 사회부 기자 역시 한국에서 홋카이도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들이 홋카이도에 도착하는 여정은 길었고 나는 고립된 노보리베츠에서 이틀째 벗어날 수 없었다. 더딘 복구에 피해는 늘었고 제때 귀국하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속출하자 한국에서의 뉴스 가치도 더욱 중요해졌다. 현장 취재를 늘려야 한다는 판단에 특파원이 진원지, 사회부 기자가 신치토세 공항, 내가 고립 상황을 전달하게 되었다.

  결국 지진 발생 이튿날, 진원지에서 80km 떨어진 지역에 고립된 나는 9시 뉴스에 현장 상황을 전화 연결로 알렸다. 촬영기자도 없는 상황이라 휴대폰으로 호텔 주변만 간단히 촬영해 간신히 전송했다. 원고는 전화로 불러 쓰고 받았다. 최첨단으로 방송 기술이 발달하고 있지만, 전기와 통신이 불안한 상황에선 역시 고전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음 미션은 여전히 노보리베츠 탈출. 귀국 항공편이 예약된 날 가까스로 신치토세 공항 국제선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문제는 공항까지 가는 것이었다. 마지막 카드는 택시였다. 호텔에서 수소문한 끝에 공항까지 데려다줄 택시를 찾아 우리 돈으로 20만 원을 주고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끝까지 아슬아슬한 휴가였다. 재난 재해의 순간이 들이닥치면 본능적으로 정보를 찾게 된다는 걸 절실히 알게 된 아찔한 여름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 휴대폰에 설치한 지진 알림 앱에서 경보음이 뜰 때면 기자의 현장은 언제 어느 곳이나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Posted in 2018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