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저널리즘] 저널리즘 X

[4차 산업혁명과 저널리즘]

저널리즘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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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기자

 

 

 

‘21세기의 르네상스 피렌체’ 샌프란시스코만(bay)에는 낙관이 흐른다. 차고에 박힌 컴퓨터 괴짜들의 끈질긴 도전이 언젠가 세상을 바꿀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꾸준히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다.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10곳 중 절반은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났다. 

  연수 일정 내내 우리 언론의 현실이 떠올랐다. 실리콘밸리의 지향과는 정확히 반대였기 때문이다. 실패를 질책하고 교훈을 방치하는 사이, 도전과 실험은 실종됐다. 혁신은 뉴욕타임스 같은 선구자들의 몫으로 맡겨졌다. 수용자의 외면은 늘 SNS, 포털 같은 기득권 탓이었다. 그러면서 지난 20년간 정작 언론 자신은 무엇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궁하다. 언론의 미래에 대해 낙관보다 비관이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구글 글라스를 탄생시킨 ‘구글 X’, 첫 민간 우주탐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스페이스 X’.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자신의 프로젝트 이름 뒤에 미지수를 뜻하는 알파벳 ‘X’를 붙인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자신들조차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창조의 과정이라는 의미다.

우리 언론계에도 실리콘밸리의 낙관을 이식할 수 없을까. 지금의 언론 환경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혁신, 이른바 ‘저널리즘 X’ 프로젝트를 꿈꿔볼 수 없을까. 실리콘밸리에서 보낸 일주일, 필자가 마주친 ‘저널리즘 X’의 단서를 모아봤다.

 

기술은 언론을 구원할 수 없다

언론의 미래에 대한 리처드 긴그라스Richard Gingras 구글 뉴스 부문 총괄 부사장의 진단과 처방은 단호했다. 디지털 시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언론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기술은 언론을 위기에서 구할 구원자가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언론의 위기를 극복할 주체는 결국 언론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가짜 뉴스(Fake News)’ 문제가 대표적이다. 긴그라스 부사장은 가짜 뉴스의 책임을 구글과 같은 기술 기업에 돌리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오히려 기술이 가짜 뉴스를 판단하도록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되물었다.

뉴스는 사회적 가치를 다룬다. 사실에 기반을 두어 생산하지만, 그 안에는 의견과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뛰어난 알고리즘이나 인공지능이라도 기술이 뉴스를 진짜와 가짜로 구분하기 시작하면 정당한 의견까지 제한할 가능성이 생긴다. 긴그라스 부사장이 기술이 가짜 뉴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옳지도 않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그는 가짜 뉴스 문제의 핵심이 신뢰에 있다고 봤다. 기성 언론에 대한 수용자의 뿌리 깊은 불신이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해법은 언론 스스로 더 믿을만하고 수준 높은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다. 긴그라스 부사장은 구글의 역할과 목표는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좋은 언론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구글이 ‘뉴스 이니셔티브News Initiative’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구글은 이 사업을 통해 뉴스룸 디지털 혁신과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지원한다. 3년간 약 3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긴그라스 부사장은 이 같은 언론 지원 활동이 결국 구글과 언론, 사회 모두를 발전시킨다고 말했다. 언론은 저널리즘의 위기를 타개할 기반을 갖게 되고, 시민은 양질의 뉴스 콘텐츠를 지속해서 소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구글은 안정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받으며 구글 중심의 뉴스 생태계를 유지해나갈 수 있다. (물론 구글이 중립성과 독점에 대한 끊임없는 시비를 비껴가는 것은 덤이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2012년 창간된 온라인 경제매체 쿼츠Quartz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언론사 가운데 하나다. 미디어 트렌드를 뉴스에 접목하고 이것을 매출로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언론사는 창간 초 아예 자사 홈페이지를 두지 않고 SNS만을 통해서 콘텐츠를 유통했다. SNS를 ‘밥그릇’을 뺏는 경쟁자로 적대시한 기성 언론과 달리 오히려 이들 SNS 플랫폼을 유연하게 오가며 입지를 강화하는 전략을 썼다.

  많은 사람이 플랫폼에 잠식당해 브랜드가 존재감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쿼츠의 역발상은 오히려 새로운 뉴스 수용자, 밀레니얼 세대에 신선하고 친숙하게 다가갔다.

  이 같은 역발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쿼츠의 색을 담은 차별화된 콘텐츠가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 온라인 편집국장 출신 케빈 딜레이니Kevin Delaney 편집장은 이른바 ‘쿼츠 곡선(Quartz Curve)’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중간 길이의 기사, 이른바 ‘데스 존Death Zone(500~800단어)’의 기사는 읽히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고 짧고 임팩트있는 기사와 깊이 있는 심층 분석 기사, 두 가지 양식의 기사만으로 승부를 봤다. 배경에는 철저한 수용자 분석이 있었다.

  ‘옵세션Obsession(강박)’이라는 쿼츠 고유의 콘텐츠 분류 방식도 콘텐츠 차별화에 한몫했다. 쿼츠는 트래픽, 독자 선호 등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옵세션의 주제를 도출한다. 그리고 각 옵세션에 맞는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생산한다. 현안의 뒤를 쫓는 것은 늘 뒷전이다. 공급자 중심 의제가 아니라 수용자 중심의 의제를 다루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작은 선택이었지만 효과는 컸다. 독자는 쿼츠의 차별화 전략에 반응했고 영향력과 매출은 커졌다. 이 성공에는 함의가 있다. 수용자들에게 이 문제가 그만큼 절실했다는 것이다. 수용자가 언론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단지 한두 건의 가짜 뉴스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와 독자가 원하는 정보 간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뉴스룸 혁신 같은 원론적인 구호 이전에 진짜 중요한 질문을 빼놓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고 왜 돌아오지 않느냐고 묻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제조할 것인가, 창조할 것인가

  실리콘밸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언론의 미래가 아니라 언론의 미래를 만드는 법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술의 열매가 아니라 좋은 질문과 좋은 영감이 부유하는 건강한 토양이었다. 

  실리콘밸리 문화의 산파 역할을 하는 스탠퍼드 대학 D스쿨Stanford University D.school에서 그 토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배울 수 있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김소형 박사는 ‘애매모호하다(ambiguous)’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활용한다는 속뜻을 가진 이 단어는 D 스쿨 교육의 핵심을 관통한다. 이 같은 애매모호한 사고방식이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즉 사용자에 공감하는 감수성과 비즈니스에 대한 전략적 사고의 결합이 창의적 해결책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디자인 씽킹에서는 다양성을 창의의 원천으로 본다. D스쿨 수업에 다양한 전공, 다양한 국적,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참여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업에 모인 학생들은 ‘미지수 X’를 만들어 낼 때까지 끊임없이 의견을 나눈다. 토론하되 상대의 생각을 배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기한이나 제한은 없다. 그저 쓸모있는 뭔가를 만들어낼 때까지 끊임없이 실패하고 교훈을 얻는 것이 이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상명하복식 업무시스템이 일반적인 한국의 기업 문화 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방식은 꾸준히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이 이렇게 탄생했고 더 많은 컴퓨터 괴짜들이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설립된 지 10년 이하의 스타트업을 꿈꾸며 날밤을 새우고 있다. 있는 것을 제조하지 않고 없는 것을 창조하는 기업에 들어맞는 맞춤옷인 셈이다.

  무조건 안된다고 하기 전에 되새김질해야 한다. 늘 해왔듯 뉴스를 찍어내서는 더 이상 수용자의 요구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제조가 아닌 창조의 관점에서 뉴스 콘텐츠를 바라봐야 한다. 느리지만 체질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부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더 많이 공유하고 더 많이 개방해야 한다. 저널리즘 X에 대한 논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Posted in 2018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