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RBB 방송국 방문기] ‘이해’와 ‘소통’, 통일 전후에 언론이 할 일은 아주 많다

[독일 RBB 방송국 방문기]

‘이해’와 ‘소통’, 통일 전후에 언론이 할 일은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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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원기자

 

 

 

 

 

  독일의 공영방송국 RBB는 통일 전 서독 베를린에 있던 자유 베를린 방송(SFB)과 동독 포츠담에 본사를 두고 브란덴부르크를 권역으로 하는 동독일-브란덴부르크 방송(ORB)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방송국이다. 분단으로 각 지역에 설립된 방송국을 합병한 것으로 독일 통일 과정에서 온 변화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알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우리가 만난 한스유르겐 로젠바우허씨는 기자 출신으로 합병 직후 RBB의 초대 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최근 뉴스에서 소개되는 우리나라와 북한, 미국의 관계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며 자신의 경험이 통일 전후의 우리나라 언론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국이라면 높은 빌딩과 송전탑이 떠오르지만, RBB는 담쟁이가 휘감은 4~5층짜리 낮은 건물을 여러 개 쓰고 있었다. 방송국이 아니라 마치 대학 캠퍼스 같은 느낌이었다. 보도국은 더 환상적이었다. 책상 옆 큰 창으로 잘 조경된 나무가 보였다. 주조정실, 편집실 어디를 가도 햇살과 나무는 함께였다. 삭막함과 긴장이 오가는 뉴스룸이 아니라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인간적인 공간이었다. 나중에 듣게 되었지만 방송국 환경을 일부러 대학 캠퍼스처럼 꾸몄다고 한다. 침묵하게되는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가 아닌 커피를 들고 걸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직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초대 사장의 구상이었다. 통일 직후 이곳은 허허벌판이어서 이를 실현하기 더 좋았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이 환경 덕분에 동독과 서독의 기자들은 더 빨리 서로를 알아갔을지 모른다.

 

RBB 개국 초기, 분단으로 인해 나뉜 사상과 문화로 어려웠던 환경

  RBB가 분단 당시 동독이었던 브란덴부르크에 설립된 이유는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통일 협약에 방송을 서독식으로 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었다. 때문에 지나치게 서독 중심의 방송을 하게 될 수도 있음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예를 들면 방송은 남한 식이지만 일부러 북한에 방송국을 둔 셈이다. 합병 당시 서독 출신은 전 직원의 5%뿐이었는데 대부분 높은 직책을 맡아 방송을 이끌었다고 한다. 하나로 합병된 방송국, 동독과 서독 주민을 아우르는 하나의 방송을 해야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오랜 시간 서로 다른 사상과 문화 속에 살던 결과는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한스유르겐 씨가 꼽은 첫 번째 문제는 동독 출신 기자들이 저널리즘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입맛대로 기사를 쓰고 보도를 했고 카메라를 들고 아무 가정집에 들어가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취재를 했다. 한스유르겐 씨는 이것이 잘못됐음을 알려줬지만, 동독 출신의 기자들은 잘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독에서 윗사람이 취재물을 보는 것은 검열이 아니라 검토의 의미였는데, 초기 RBB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검열했다고 한다. 저널리즘 윤리 없이 멋대로 쓴 기사를 그냥 내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상으로 인한 문제는 또 있었다. 개국 초기에 동독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던 진행자에게 방송 기회를 주었는데 이 사람이 방송에서 갑자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아픈 서독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처방을 해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결국 큰 파장을일으키고 해고가 되었다고 한다.

  통일 전 동독 정보국에 속했던 직원이 방송국에 상당수 근무하고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 당시 직원 천 명 중 60명이 공식적인 정보국 출신이었다고 한다. 통일 전 정보국 소속으로 감시를 하던사람과 감시를 받던 사람이 한곳에서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직원들 사이 인간관계에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정보국 출신 중 깊게 관여했던 일부 직원은 해고되었는데 한스유르겐 씨는 해고의 판단 기준은 지금까지도 논란거리라고 말했다. 방

송 프로그램을 짜는 것도 동독과 서독의 시청자를 모두 고려해야 했지만 문화 차이가 심했다고 말했다. 한스유르겐씨는 우선 기존의 동독 프로그램을 다 없애지 않았고, 오락과 연예 프로그램은 가급적 유지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통일 이후 동독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많이 신설된 프로그램은 새로운 사회체제, 일자리, 보험 등 서구사회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매거진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체제로 물들었다고 한다.

 

통일 전후 언론인이 가져야 할 자세

독일 통일 직후 RBB 방송국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통일 전후 언론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했다. 사실 그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스유르겐 씨의 답변은 놀랍고도 현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언론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라며 “북한 주민들과 결혼하는 심정으로 접근해달라!”라고 말했다. 나는 결혼한 상대자를 존중하듯 먼저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그들이 겪어 온 삶을, 역사를 보듬어 달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한스유르겐 씨는 설명을 더했다. 통일 직후 서독이 동독보다 훨씬 잘 살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이렇게 되면 동독인, 북한 사람들도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그 삶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없게 된다는것이다.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먼저 가지고 취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그의 말에 감명을 받았다.

  취재거리를 찾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색다른 조언을 했다. 통일 전후 정치적인 보도에 집중할 수 있는데 정치 보도가 아닌 다른 것을 찾는 것을 권한다고 말이다. 예를 들면 남북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선입견에 가려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북한 사람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정치’를 빼고 난 다음의 북한은 어떤 곳인지, 북한의 주민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말이다. 모두 궁극적으로는 ‘이해’와 ‘소통’을 바탕으로 한 취재이다. ‘정치’가 아닌 그 속의 ‘사람’을 찾는 취재였다. 그리고 이런 관점을 가지면 취재거리는 매우 많은데, 이유는 사람이 변하는 속도가 여러 해 걸리기 때문에 그때마다 계속 북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배경은 무엇인지 취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말했다. 미디어가 어떤 제도처럼 현실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다름을 인정하는 이해심, 선입견을 버리고 배려하는 마음 등을 만드는 것은 미디어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휴머니즘을 담아 구상한 RBB 방송국의 건물들처럼 그의 언론 철학도 매우 인간적이었다. 사상과 정치가 땅을 가를 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 서독과 동독 사람들은 그리고 우리나라와 북한 사람들은 같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정치 앞에 사람이 먼저 있고, 그리고 그 부분에서 언론인이 할 일은 아주 많다는 것도 말이다.

Posted in 2018년 11.12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