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회 기획보도 부문_내 세금 어떻게 쓰이나 2018_한국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황일송 기자

민간단체 보조금 비밀 장부를 열다.

 

4대강과 자원외교 등 수십조 원짜리 비리가 판치는데 기껏해야 한 단체당 지원액이 평균 4천만 원에 불과한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을 취재하는 게 옳은 일인지 몇 번이나 자문했다. 들인 공에 비해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후원회원들이 모아준 돈을 낭비한 꼴이라는 부담 때문이다. 자잘한 기사 여러 개보다 큰 거 한 방을 더 높이 쳐주는 기자 사회의 속성도 적잖이 신경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문제를 다루게 된 이유는 일종의 의무감이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쉽게 부패하듯 사회적 관심이 덜한 분야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보조금 횡령 의혹 20년만에 최초 검증

행정안전부가 지난 1999년부터 올해까지 비영리민간단체에 지원한 보조금 규모는 모두 2182억 원. 매년 평균 100억 원이 넘는 세금이 사용됐지만 이에 대한 세밀한 검증은 지난 20년간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정부가 회계 감사 내역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데다 언론의 무관심으로 감시 사각지대에 놓였기 때문이다.

기자가 비영리민간단체에 지원하는 보조금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 겪은 황당한 사건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는데 쓰라며 지난 2013년 예비역영관장교연합회에 45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예비역영관장교연합회는 제주 4·3사건이 폭도들에 대한 정당한 토벌이며,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군의 초토화작전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단체다. 보조금은 주로 단체 회원들과 그의 가족과 지인들의 여행 경비로 사용됐다. 역사를 왜곡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단체에 국민의 혈세를 지원한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비영리민간단체에 지원된 정부 보조금의 사용내역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았다. 행정안전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비공개 결정 통지를 받았다. 정보공개를 요청한 자료에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취재할 목록 상단에 민간단체 보조금을 기록해 놓고 정권이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초 마침내 56기가바이트 분량의 보조금 회계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 자료에는 지난 2016년 223개 민간단체에 지원된 88억 원의 정부 보조금 사용내역이 담겼다. 자료를 분석하고 기획기사를 연재하는데 장장 10개월을 매달렸다. 휴가는 고사하고, 휴일에도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얼추 60만 장이 넘는 보조금 지출 영수증과 관련 첨부자료를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보조금 사용 내역을 사상 처음으로 검증했다.

단순히 회계 서류만 훑어본 것이 아니라 현장 확인과 탐문 취재를 통해 횡령 사실을 밝혀냈다. 인건비를 받은 학생들을 직접 만나 실제 지급받은 돈이 서류상 지급한 금액보다 훨씬 적다는 증언과 함께 최공재 차세대문화인연대 대표 등에게 차액을 역송금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이 설립한 ‘청년이여는미래’라는 단체가 자전거캠프를 열면서 숙박비와 식비를 부풀려 차액을 빼돌린 사실도 밝혀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장바구니와 L홀더를 시세보다 7배 비싼 값에 사들인 것처럼 허위 자료를 꾸며 1000만 원이 넘는 보조금을 횡령한 사실을 찾아냈다.

이번 보도는 부실한 보조금 관리 실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감사원은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대상으로 비영리민간단체에 지원된 정부 보조금 실태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행정안전부는 횡령 또는 부정 사용된 정부 보조금을 환수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보조금 관련 규정의 미비점을 보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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