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회 지역뉴스 부문_미술품 기증의 두 얼굴…비공개 협약 최초 공개_KBS광주 지종익 기자

기증의 검증

기증 : 선물이나 기념으로 남에게 물품을 거져 줌.

고로 조건이 달리면 기증이 아니다.

취재의 계기가 된 미술품 기증협약서의 일부 내용이다.

 

◎기증자 이름의 전시실 명명 ◎기증자·지정 자연인·법정 상속인의 기증 미술품 점검 ◎기증 작품 전시실을 철수할 경우, 기증자·상속인·지정인에게 반환, 비용은 수증자 부담 ◎기증 작품 전담 연구원 지정 ◎기증자는(수증자와 협의 하에) 기증 작품이 아니어도 기획·전시 가능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개최, 기증자 사후 청년작가초대전에 유족 초청 ◎기증자를 초청할 경우, 동반1인까지 왕복항공권과 숙박 제공 ◎명예관장실의 계속적 활용, 명예도로의 지속적인 관리

 

사전적 정의는커녕 사회적인 통념과도 거리가 멀다. ‘기증’이라는 이름에 가려 20여 년 동안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문서였다.

 

피카소 작품이 있다고 해서

전남 영암군의 기증은 이렇게 시작됐다고 관계자는 얼버무렸다. 그 후 영암군은 기증을 받는 대가로 60억 원을 들여 미술관을 지었고, 기증자가 언제든 쉴 수 있는 한옥도 만들었다. 광주시는 25년 전에 기념관 설치와 영구 상설 전시를 약속해버렸다. 2백여 점 기증의 대가였다.

작품의 금전적 가치를 따지고 나서는 건 끝까지 피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전제는 역사적 평가의 완결성이다. 공공재와 세금을 투입해 위의 의무사항들을 천 년, 만 년, 영구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가치를 머금고 있는가?

시야를 확장해보자. ‘예향 남도’의 핵심 멤버들이 있다. 남종화의 산실이며, 오지호, 김환기, 천경자를 언급하지 않고 한국 미술사를 논하기는 어렵다. 이들을 제쳐둔 채 남도 땅에 ‘공립’ 하정웅미술관 두 곳이 만들어졌다. ‘하정웅로(路)’임을 알리는 비석도 두 지역에 있다. 누군가 말했다. “살아있는 사람인줄 몰랐다”고.

아직 부족한가? 부산에도 협약서가 있다. 대전에도 협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아직 전시 공간이 좁은 포항은 미술관을 확장하면 ‘하정웅컬렉션전시실’ 설치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도 그의 이름을 딴 ‘컬렉션’이 존재한다. 그의 메세나 정신은 전국 곳곳에서 이렇게 기려진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건 머나먼 이상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항의는 예상했다. 놀라운 건 응원과 격려였다.

미술인들은 ‘외로운 싸움’이라며 먼저 응원해줬다. 전시 행사의 주인공은 늘 자신들이 아니었다고 푸념했다. 하정웅미술상 수상 작가들은 ‘비장의 카드’를 꺼낼 각오를 보여줬다. 보도의 당위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성역이었다”, “용기를 얻었다”는 공무원들의 은밀한 속삭임은 보도를 재촉했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미술품 기증과 예우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많은 이들이 미술사적으로 기념할 일이라며 조용히 자축했다.

광주시립미술관에는 시민의 것이 아닌, 근거 없는 작품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논란이 일자 기증자는 예정된 기증협약식을 취소했고, 광주시는 미리 받아놓은 작품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보관’만 하고 있다. 좀처럼 들여다보기 어려운 수많은 수장고에는 검증되지 않은 작품들이 얼마나 잠자고 있을지 모른다. 예술을 경제적 가치로 논하는 건 점잖지 못하다. 그럴수록 그 검증 과정만 검증하면 된다. 작품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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