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9회 지역 뉴스부문_5분 빨리가기 위해 5만 년을 베어낸 비자림로_KBS제주방송총국 강인희 기자

[폭염 만큼 뜨거운 관심 ‘비자림로’]

길게 뻗은 도로 양옆으로 하늘을 찌를 듯 꼿꼿하게 늘어선 삼나무들! 2002년 당시 건설교통부가 가장 아름다운 길 대상으로 선정한 구좌읍 평대리에서 봉개동까지 이어지는 총 연장 27.3km 왕복 2차선의 제주시 비자림로입니다. 지금은 이 비자림로 일부 구간에 잘려나간 삼나무들의 밑동만 잔뜩 남아있습니다. 지난 여름 비자림로가 역대급 불볕더위만큼이나 역대급 관심을 받는 길이 된 이유입니다.

 

논란이 된 구간은 비자림로의 중간쯤 되는 제주시 구좌읍 대천동 사거리에서 송당리 방향 2.94km 입니다. 제주도는 이 구간의 교통량 증가와 겨울과 고사리철 사고 위험 등을 이유로 왕복 2차로를 4차로로 넓히고 회전교차로도 만들 계획입니다. 207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지난 8월 3일 KBS취재진이 처음 공사 구간을 찾은 현장은 참담했습니다. 중장비가 수령 30년 안팎인 삼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던 겁니다. 계획대로 하루에 100 그루 이상 2,400여 그루를 베어낸다면 숲 대신 콘크리트가 깔리고 삼나무 군락이 빚어내는 경관이 사라질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덜컥했습니다.

 

시청자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첫 방송된 [도로 확장으로 삼나무길 밀어내…”경관 훼손” 논란]은 예상보다 더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제주지역 환경단체와 정치권에서 비자림로 공사에 대한 비판 성명을 쏟아냈습니다. 추가로 회전교차로가 들어설 곳은 벌목으로 제주의 옛 목축문화 유산인 ‘잣성’ 돌담까지 훼손됐다는 내용까지 보도하자 비판 여론은 온라인을 통해 번졌고 비자림로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과 중앙 정치인들까지 비판 목소리에 가세했습니다.

 

 

[뒤늦은 공사 중단…”백지화는 어려워”]

제주도는 늦게나마 공사를 일시 중단했지만, 주민 숙원 사업인 만큼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언제든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차량 증가에 따른 교통난 해소에 필요하다며 비자림로 확장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도 있습니다. 삼나무가 제주 향토수종도 아니며 오히려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비염 등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논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자림로 확장 공사는 삼나무를 자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통팔달 제주도의 도로]

지난 2017년 기준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제주 도로 포장률은 99%로 광역시를 제외하면 전국 1위입니다. 제주 땅값이 가파르게 올라 도로 1km를 새로 내는데 100억 원 넘게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도로사업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비자림로 도로확장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던 것은 이 지점입니다. 많은 이들이 제주에서 안식을 얻고 다시 찾고 싶은 이유는 바로 잘 보존된 산과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외 자본이 풍경 좋은 곳마다 호텔과 리조트를 지어놓고, 행정에서는 우후죽순 도로를 늘린다고 제주가 찾고 싶은 곳이 될까요?

 

 

[‘제주의 길’을 고민하다]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취재하게 된 배경에는 우연과 필연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제주의 길을 주제로 한 보도특집을 준비하는 과정에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한 도로를 가보자’라는데 생각이 닿았고 찾은 곳이 바로 비자림로였습니다. 길은 개설 계획만 나와도 지역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주민들의 생활이 바뀌고 주변 땅값이 껑충 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가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걸까요? 환경은 미래세대에 잠시 빌려 쓰는 것, 2018년 제주에 사는 우리가 꼭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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