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촬영기자] 온몸으로 우는 사람

온몸으로 우는 사람

폭염촬영3

 

YTN 심관흠 기자 (영상취재부)

 

카메라의 뒤편
10㎏는 거뜬히 넘는 쇳덩이를 어깨에 들쳐 메고 아스팔트길을 걷는다. 검은색 운동화의 밑창은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에 닿을 때마다 쩍쩍 들러붙는다.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있으면 고무로 된 아이피스가 눈을 뜨겁게 감싼다. 어깨와 얼굴에는 50도의 열기를 뿜어대는 쇳덩이가 바짝 붙어 있다. 이미지 센서가 타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작열하는 태양에 줌을 냅다 꽂아버리는 샷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잠시 눈을 떼고 더워 보이는 사람이 없나 찾아본다.
여기 있다. 땀에 흠뻑 젖은 셔츠를 입고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가장 더워 보이는 사람은 카메라 바로 뒤에 있다.

 

더위를 찾아서, 고통을 담아서
태양이 내리쬐는 거리, 정전된 아파트, 에어컨 없는 경비실, 뜨거운 공사장, 창문 없는 쪽방촌…. 40도를 육박하는 날씨에 가장 더운 곳을 찾아다닌다. 직접 현장에 가지 않으면 찍을 수 없다. 이 간단하고 당연한 명제는 가끔 참으로 잔인하게 느껴진다. 방법이 없다. 더운 걸 보여주고 싶으면 커다란 ENG 카메라 들쳐 메고 더운 곳으로 가는 수밖에….
한 아파트에서 제보가 들어왔다. 좁디좁은 경비실에 에어컨이 없어 경비원들이 고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제보였다. 현장을 도착해보니 1평 남짓한 공간에 사무공간과 화장실이 있었다. 에어컨은 없고 선풍기만 3대를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선풍기를 돌려도 책상 위 온도계는 32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내 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떻게 매일 이런 곳에서 일하냐고 물으니 주로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밖에 있으면 시원하고 자기 일은 그나마 힘든 편도 아니라 괜찮다고 덤덤히 말했다. 사회적 약자들은 항상 자기는 괜찮다고 말한다. 이렇게 뉴스거리가 될 정도의 열악함에도 자기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열악함을 어떻게라도 더 표현하고파 모자를 벗어달라고 부탁했다. 벗어진 머리에 땀이 절어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찍으며 ‘이건 더위가 좀 표현되겠다.’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자괴감이 따라왔다. 나에게 있어 남의 고통은 좋은 그림 한 컷에 불과하다.
연이어 폭염 단골 아이템인 쪽방촌을 취재하러 갔다. 바람도 통하지 않는 쪽방촌은 더위를 피하고자 주민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카메라를 경계하는 그들의 눈빛에 셔츠가 다시 젖기 시작했다. 취기에 시비를 거는 행인부터 “왜 또 찍냐”면서 소리쳐대는 아저씨,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져라 보는 할머니까지 이곳에 나를 반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하지만 현장에 와서 그림 없이 갈 순 없다. 운이 좋아 한 주민을 섭외했다.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녀를 따라나섰다. 골목에 들어서니 얼기설기 집들이 얽혀있었다. 꼬불꼬불 미로 같은 골목을 걸어가며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얘기해줬다. 정신병원을 뛰쳐나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단 바로 밑에 있는 문이 자신이 사는 방이라고 했다. 창문은 있지만, 창문밖엔 회색 벽만이 보였다. TV 한 대와 선풍기 한 대. 그게 끝이었다. 찜통과도 같
은 방 안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을 낼 뿐이었다. 왜 주민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사람이 도저히 버티기 힘든 환경이었다. 셔츠가 땀으로 다 젖고 나서야 인터뷰가 끝났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려 차에 오르니 에어컨의 냉기가 몸을 감쌌다. 이제야 살 것 같다. 그들은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쪽방촌의 폭염은 나한테는 일회성 아이템이지만 그들은 일상이다. 갈 길 없이 속에서 몰아치는 미안함. 그들의 고통만 잔뜩 담고 온 카메라는 아직도 뜨거웠다.

 

참회의 ‘몸물’
더워서 찡그리는 표정,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가는 땀방울, 햇빛을 막고자 겉옷으로 머리를 가리는 사람, 차가운 음료수에 얼굴을 대는 사람….
‘더위 스케치’라고 불리는 촬영은 한 컷 한 컷이 타인의 고통이다. 더워서 짜증이 날 대로 날 텐데 시커먼 렌즈까지 자신의 얼굴을 쫓고 있으니, 불쾌감을 눈빛에 듬뿍 담아 렌즈에 쏘고 간다. 뷰파인더로 그 눈빛과 마주칠 때는 뜨끔하다.
1평 남짓한 찜통에서 일하는 경비원도, 기자라는 불청객이 수시로 찾아와 괴롭힘을 받는 쪽방촌 주민도, 더워 죽겠는데 땀 좀 찍을 테니 가만히 있어 달라는 주문을 받는 공사장 인부도 얼마나 짜증나고 불쾌할까.
뉴스란 것의 9할이 나쁜 소식이다. 그런 소식을 전하면서 월급 받는 게 기자다. 기자니 뭐니 말은 거창해도 결국 나는 남들한테 이미지 착취해서 밥 벌어먹는다.
입사하고 이년 사이 새치가 늘고 욕도 늘었다. 촬영기자라는 직업은 참 힘들고 버겁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땀을 한 바가지 흘려도 그것이 남의 더위로 밥 벌어먹는 나의 숙명인 것을.
오늘도 운다. 온몸으로 운다. 그나마 그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참회의 ‘몸물’을 펑펑 흘린다.

Posted in 2018년 9.10월호,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