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추억

수습기자의 추억

안형준 방송기자연합회장

‘2차 붕괴위험이 있으니, 구조대와 취재진은 즉시 철수 바람!’

1995년 6월, 붕괴된 삼풍백화점 지하 슈퍼마켓 현장. 지휘본부의 결정에 따라, 구조와 취재 중이던 소방대원들과 방송기자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개국 석 달된 YTN의 영상취재기자 차규남은 가장 늦게 철수대열에 합류했다. 방향을 바꿔 지상으로 첫 발을 떼려는 순간, 멀리서 희미하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KakaoTalk_20180828_105931747

“살려 주세요~”

차기자는 지휘본부의 지시를 어기고 오디오맨과 함께 구조하던 동굴로 들어갔다. 그는 ‘ENG카메라가 너무 커서, 낮은 포복 자세로 카메라를 밀면서 한참을 기어 들어가야 했다’고 회고한다. 교 교사였다. 차기자는 교사의 ‘살려 달라’는 오디오를 픽업하고, 윤곽선이 보이는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테이프를 뽑아 오디오맨을 통해 밖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갇혀있던 교사와 함께 구조대를 기다렸다. 생존자의 음성과 윤곽이 담긴 테이프가 방송됐고, 지휘본부와 당시 서울시장 고건은 적극적인 구조를 선택해, 소중한 인명을 더 구해냈다. 필자가 수습기간을 마친 직후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로, 502명이 숨졌고 937명이 다쳤다. 당시 언론매체는 물론 대부분의 국민은 희생자를 구조한 방송기자 용기 있는 행동을 칭찬했다.

지난 8월 23일, 새내기 방송기자 20여 명과 행정안전부를 찾았다. ‘2018 방송기자연합회 새내기 교육’ 나흘째 행사인 재난안전교육. 마이크를 잡은 공무원은 ‘지나친 속보 경쟁과 선정적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몇 컷의 기사를 보여주었다.

<해군, “탑승객 전원 선박 이탈…구명장비 투척 구조 중”>
<“단원고 학생 325명 전원 구조”>
<구조된 6세 아이, “혼자서 나왔어요” 눈물>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 당시 공중파 방송의 오보와 실수를 보여주며 교육을 진행했다.

이후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방문하고, 중앙소방학교에서 소화기와 탈출 체험교육이 진행됐다. 하지만 필자는 멍하기만 했다. 새내기 후배들에게 ‘2012년 파업과 공정방송 투쟁 이후 벌어진 해고와 유배, 부당인사로 방송사 보도국에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오래 전 끈질긴 기자정신으로 건물더미에 갇힌 실종자들을 구한 선배 기자의 얘기를, 이제야 용기 내어 꺼내본다.

“기자 외에는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메마른 땅에 물을 주고, 생기 넘치게 만드는 오아시스 같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소연 하고 싶어도 어디에 말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찾아가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나만의 취재력으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

“취재가 막히면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안되면 이의신청과 행정소송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새내기 기자들은 스마트펜 등 다양한 취재기법 교육에 관심을 보였다. 어떤 선배는 ‘크고 작은 유혹을 이겨내고, 골프에 심취하지 말라’는 충고도 했다. 혹자는 ‘방송기자연합회에 이달의 기자상을 받으러 오라’고 했다. 필자는 차규남 선배에게 삼풍 당시 상황을 후배들에게 강의해 달라고 전화했다. 폭염을 이겨내고 반갑게 맞은 2018년 가을, 오래 전 수습기자의 초심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Posted in 2018년 9.10월호, 발행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