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댐 붕괴사고] ’19년차 기자’의 라오스 댐 사고 현장 취재기

’19년차 기자’의 라오스 댐 사고 현장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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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송인호 기자 (국제부)

 

얼떨결에 떠난 라오스 출장…19년 차 기자도 앞이 ‘캄캄’

지난달 23일 외신을 통해 라오스 댐 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필자가 라오스 현지 출장을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SK건설이 시공하는 보조댐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국제부에서 출장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부서 내부 사정(?)으로 99년입사인 필자가 낙점됐다. “송 차장, 출장 바로 준비해!”
앞이 캄캄했다.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하면서 국내가 아닌 외국의 재난지역 취재는 처음이었다. 비행기 표부터 녹록지 않았다. 라오스 항공편은 수도 비엔티안에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취항하는데 주로 저녁 비행기였다. 또 사고가 난 지역은 비엔티안에서도 라오스 국내선을 타고 1시간 30분가량 남쪽 팍세공항까지 600km 이상 이동해야 하는 곳이었다. 또 사고 댐까지는 차량으로 5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오지 중의 오지인 셈이다.

 

가이드 섭외부터 난관 봉착…”인맥 총동원”

항공편과 숙박 예약도 문제였지만, 하루 만에 현지 가이드와 차량을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라오스 교민회, SK건설 홍보팀, SBS 담당 여행사 측과 통화했지만, 하루 만에 가이드를 구하는 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아타푸주엔 한국 교민들이 거의 살지 않는데다 관광지로도 아직 알려지지 않아 가이드를 정 구하려면 수도 비엔티안에서 같이 내려와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댐 사고로 지역 렌터카까지 웃돈을 줘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언론계 선배로부터 수도 비엔티안에 영향력 있는 국내 기관 인사가 파견돼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실례를 무릅쓰고 밤늦게 전화했다. 다행히 최대한 알아보겠다는 연락이 왔고, 가이드 섭외도 못 한 채 다음날 저가항공편으로 비엔티안으로 향했다. 현지 공항엔 선배가 소개해준 분과 여행사 대표 A씨가 취재진을 맞았다. 필자는 가이드랑 차량 섭외가 됐는지부터 물었다. 답변은 ‘Yes’였다. 사고 지역에서 커피 사업을 하던 20대 한국인 청년이 지금 잠시 쉬고 있는데, 일주일 정도 현지 가이드가 가능하다고 해서 섭외해 놨고, 차량도 혹시 몰라 승합차와 사륜구동 트럭 두 대를 예약해 놨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유능한 가이드 섭외가 취재 성패 좌우

해외 재난지역 취재는 현지 사정을 잘 알고 현지어가 능통한 가이드(통역) 섭외가 취재의 성패를 좌우한다. 취재진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수몰 마을 지역에 들어가서 참담한 현장 영상을 확보하고 사고 댐에 접근해서 무너진 댐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다른 방송사들도 속속 라오스로 취재진을 파견하는 상황에서 이 임무는 하루라도 빨리 달성해야 했다. 회사에서도 압박이 들어왔다. 그런데 아뿔싸. 두 임무 모두 난관에 봉착했다. 수몰 마을 취재는 라오스 군 당국이 언론사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고, 해발 800m에 있는 사고 댐 접근은 안내 없이는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필자는 가이드 복福이 있나 보다. 20대 후반의 패기 넘치는 안내자는 외국 대학을 나온 재원이었다. 영어는 물론 라오스말에 능통했다. 라오스 취재 셋째 날, 드디어 수몰 마을로 가는 길이 열렸다. 수재민이 머물고 있는 사남사이 구청 공무원을 설득해 구조헬기에 좌석 3개를 확보한 것. 현지 파견된 국내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헬기에 탑승해 수몰 지역을 촬영하고 생생한 수해 현장을 보도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물거품 된 구조헬기 탑승…’전화위복’ 수몰 마을 취재 성공

부푼 꿈(?)을 안고 헬기를 기다린 지 1시간. 오후 2시가 넘었지만, 헬기는 오지 않았다. 취재하고 영상 송출을 하려면 적어도 4시까지는 숙소에 도착해야 하는 상황. 뒤늦게 들은 얘기지만, 구조헬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던 라오스 의료진이 한국 취재진 탑승에 불만을 품고 헬기 포인트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암담했다. ‘회사에는 8시 뉴스에 생생한 영상과 함께 수몰 마을 르포를 만들겠다고 보고까지 했는데….’
헬기 취재가 무산되고 잠시 좌절하고 있는 사이 함께 헬기를 기다리던 현지 공무원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우리 취재 차량에 라오스 국영방송 카메라 기자를 태우고 수몰 지역에 들어가는 조건이었다. 라오스 군 당국이 막고 있어서 성공 보장은 없지만, 한 번 해보자는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 천신만고 끝에 군 당국의 허가를 받고 고대했던 수몰 마을 취재가 시작됐다. 마을은 온통 진흙으로 뒤덮인 생전 처음 보는 수해 현장이었다. 그날 우여곡절 끝에 촬영한 영상은 8시 뉴스에 맞춰 전파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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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도사린 해외 재난현장…’위험지역 출장 상해보험’ 필수

돌이켜보면 라오스 수해 현장 취재는 매우 위험했다. 비가 계속 내리는 상황에서 홍수와 산사태 등으로 2차 사고를 당할 수 있고, 풍토병과 전염병 감염 우려도 컸다. 통신은 느린 3G망이고 그나마 뚝뚝 끊기기 일쑤였다. 도로 상황은 최악으로 폭우에 움푹 파인 비포장도로는 10km 이동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끼니를 챙기는 건 사치였다. 배고픔보다 더 참기 어려운 건 원하는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타사 취재진도 고군분투하긴 마찬가지. 한 방송사 취재진은 사고 댐으로 가다 길을 잃어 하마터면 방송을 펑크낼 뻔했고, 다른 방송사는 이동 중 차량이 고장 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뻔했다.
기자 정신이란 무엇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 걸고 취재하는 것일까? 기자가 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부끄럽게도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위험 국가의 재난현장 취재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 기자들에게는 기자 정신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안전과 생명도 중요하다는 말을 이번 기고를 통해 꼭 전하고 싶었다. 전쟁이나 테러, 지진, 수해, 산불 등 외국 재난지역에서는 여행자 보험이 무용지물일 수 있다. 별도의 위험지역 출장 상해보험을 안 들어주면 출장 못 가겠다고 회사에 으름장을 놓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Posted in 2018년 9.10월호,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