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하는 그곳에, 보이지 않는 그들이

2016년 11월 이우환 화백 그림 위조 일당 검거 당시 보도 영상

2016년 11월 이우환 화백 그림 위조 일당 검거 당시 보도 영상

주목하는 그곳에, 보이지 않는 그들이

YTN  이경국 기자 (사회부)

 

막이 오르고 뮤지컬이 시작됐다. 주인공의 등장과 함께 강렬한 조명이 비춘다. 주인공의 육성이 화음과 섞여 공연장을 메우고 청중은 갈채를 보낸다. 박수는 오롯이 주인공의 것. 어둠 속 흘러나오는 화음과 멜로디가 노래를 풍부하게 꾸미지만, 관객들은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볼 수 없으며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이목이 집중된 사건·사고 현장에는 항상 수습기자가 있다. 그들은 현장을 ‘쓸고 다니며’ 곳곳에 뿌려진 조각들을 줍는다. ‘팩트’라 불리는 이 조각들은 엉성하게 얽혀 전달된다. 선배 손을 거쳐 잘 꿰매진 조각들은 리포트가 돼 전파를 탄다. 하지만 화면에도, 바이라인에도 수습기자는 보이지 않는다. 뮤지컬 속 화음과 멜로디처럼.

한 줄, 한 장 단서만으로

“제보는 YTN이지.” 야근을 하다보면 타사 기자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는 말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YTN 수습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보라는 시련과 매일 전쟁을 치른다.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지는 제보들. 육하원칙에 맞춰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제보가 있는 반면, ‘사람이 죽은 것 같아요’ 한 줄짜리 제보부터, 경찰차나 구급차가 찍힌 사진 한 장만 ‘툭’ 보내는 제보자도 많다.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했거늘, 현장이 어딘지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결국 손톱보다 작게 찍힌 건물을 단서로 동네를 찾고, 물어물어 사건 전말을 확인한다. CCTV 영상부터 녹취까지. 흩어져 있던 퍼즐을 전부 맞추고 나면 한 줄, 한 장짜리 단서는 어느새 묻힐 뻔 했던 오너 일가의 갑질을 폭로하는 기사, 무자비한 폭력을 고발하는 기사가 돼 있다.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한숨 푹푹 내쉬면서도, 1을 100으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YTN 수습기자는 그렇게 현장을 배운다.

24/7

모든 수습기자들은 경찰서 순회 취재, ‘마와리’를 피할 수 없다. 수도 서울을 조각낸 몇 개 라인에 흩어져 4~5개의 경찰서를 종일 쳇바퀴 돌듯 돌아다닌다. 비교적 피해가 경미한 접촉사고와 주취객의 소란까지, 특종이라도 건진 것처럼 그럴듯하게 풀어내보지만 어김없이 돌아오는 건 상상치도 못했던 질문 폭탄이다. 꾸중 듣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자 끝이 되다 보니, “힘드냐” 작은 위로에 울컥했던 기억도 난다.

이처럼 순회 취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지만, 24시간 뉴스를 하는 보도전문채널의 수습기자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내가 취재한 내용이 다른 곳보다 빠르게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것, 매력적인 동시에 책임의 무게 역시 막중하기 때문이다. “야 이거 얘기 되는 것 같은데” 라는 수화기 너머 선배의 말에 설레기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던 것이 이 때문일까. 보고 들은 것을 기사로 만들기 위해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수습기자 시절인 것 같다.

“다른 기자들보다 빨라야 해.”

“빠른 게 다가 아니야.”

수습기자를 괴롭히는 딜레마다. 보고는 해야 하는데 내용이 없고, 내용을 채우자니 시간이 촉박한. 손에 땀을 쥐는 상황이 이어진다. 극도의 육체적·정신적 피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치밀한 계획’. 동기야 어찌됐건 나태함으로 물들어있던 삶에 계획 세우는 것이 습관이 됐고, 수습 딱지를 떼고 나니 계획이란 것이 기자로 살아감에 있어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수습시절 취재한 이청연 전 인천교육감 검찰 출석 현장

수습시절 취재한 이청연 전 인천교육감 검찰 출석 현장

자기모순?

수습기자들은 수없이 많은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수습 시절 받은 명함을 보면 각계각층, 모든 업종을 망라한다. 경찰과 검찰, 건물주는 물론 대전에서 이름 깨나 날린다는 무당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두툼하게 쌓인 명함을 펼치면, 오히려 헛헛한 기분이 든다.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중에 몇이나 될까?’하는 의문 때문이다. 스펙트럼 넓히기에만 집착하는 ‘도제식 교육’의 방증은 아닐까.

제너럴리스트, 언시생 시절을 거쳤다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단어다. 다방면에 걸쳐 많이 아는 사람. 정작 업계에서는 제너럴리스트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선임기자나 전문기자가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는 말에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매년 뽑혀 들어오는 백지 같은 수습기자들은 틀에 박힌 교육 아래 180일만 있으면 찍어낸 듯, 때 묻은 제너럴리스트로 변모한다. ‘시니어 기자’가 되어 케케묵은 때를 털어내려 결국 이국땅으로 유학을 떠나는 선배들의 모습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평소 선배들은 “결국 남는 건 사람이야”, “기자는 사람이 자산이야”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촌각을 다투는 취재 경쟁, 팩트 하나에 울고 웃는 기자들에게 인맥과 취재원은 경쟁력이다. 수습 뗀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수습기자 시절만큼 취재원 만들기 좋은 시간이 있었나 싶다. 쏟아지는 보도 자료와 기자회견들 속에서 사람 챙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치하지만, 친한 경찰이 생겼다며 자랑하던 타사 기자를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심지어 수습을 뗀 지금도 유달리 취재원과 관계가 좋은 기자들을 보면 마냥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건은 필요 없으니 사람 챙겨라” 후배에게 시원하게 지시하는 선배가 될 수 있길, 또 그런 환경이 마련되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Posted in 2018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