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1년…그렇게 기자가 되었다

2018년 1월 28일 보도된 강남구 친모 살인사건 취재 당시의 모습

2018년 1월 28일 보도된 강남구 친모 살인사건 취재 당시의 모습

그리고 1년… 그렇게 기자가 되었다

SBS 강민우 기자 (정책사회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꾀죄죄한 모습으로 정신없이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던 수습기자가 내 눈엔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던 때가 있었다. 누가 그렇게 술을 먹였는지 2진 기자실까지 올라가지도 못한 채, 차디찬 경찰서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던 한 수습기자. 아무리 깨워도 정신 못 차리던 그가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강인한 정신력을 느꼈다.

민원실 뒤편에서 뭐가 그리 서러운 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다가, 근처에 형사과장이 담배 피우러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당차게 이것저것 묻던 모습에서 프로 정신을 느꼈다. 기자를 꿈꾸던 한 의무경찰에겐 수습기자들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

수습기자들의 처참한 생활을 보고 가지고 있던 기자의 꿈을 접기도 한다는데, 난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저렇게 열정적인 기자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며 꿈을 더 키웠을 정도니 당시 기자라는 직업에 얼마나 두터운 ‘콩깍지’가 씌워져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지난해 어느 가을날, 나의 수습 생활이 시작됐다. 의경 시절 씌워졌던 수습기자 ‘콩깍지’가 벗겨지는 데까진 사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과거 마주쳤던 그 수습기자들의 행동이 정신력이나 프로정신에서 우러나왔다기보단, 가혹한 수습 생활에서 다져진 ‘악과 깡’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2017년 12월 재천 화재사건 현장에서

2017년 12월 재천 화재사건 현장에서

독기는 품고 ‘겉멋’은 버리고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온갖 내용을 다 확인하고 사건까지 찾아야 했던 상황. 정보 보고 거리라도 챙겨 볼 요량으로 형사 데스크 문을 열심히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건 경멸에 찬 눈빛뿐이었다. 처음엔 자존심 챙긴답시고 ‘너네 아니면 내가 뭐 못 알아낼 줄 아나?’라는 생각에 호기롭게 돌아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달라졌다. 한 시간의 수면 시간이라도 확보하기 위해선 영혼이라도 기꺼이 팔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어떻게 뚫고 들어가서 뭘 건져올까 궁리하기 바빴다, 밤늦게 취재원에게 전화하기도 꺼리고, 불필요한 언쟁은 피하려 하던 일반적인 대학생이었던 나. 어느 순간 독기 품고 하이에나처럼 경찰서 여기저기를 떠도는 수습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

습 과정 중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소위 ‘겉멋 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느 초심자가 그러하듯, 수습기자 역시 이제 막 수습 생활을 시작할 때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다. 치열한 ‘언론고시’ 판에서 살아남아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침내 꿈꿔왔던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으니 얼마나 신이 나 있겠는가. 하물며 초췌한 수습기자의 모습조차 동경했던 나였다. 주변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어깨엔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어깨에 힘이 빠지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수습 초기 전화 통화 목소리부터 행동 하나하나까지 다 거만하다며 며칠에 걸쳐 욕을 먹었다. 선배들이 강조하는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엔 겸손한 기자’의 모습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갖춰지기 시작하는 듯하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약 6개월의 수습 과정을 거치면서 체득하게 된 집요함과 겸손함이 이제 막 시작한 기자 생활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하루하루 기사를 소화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라돈 침대’ 연속 보도처럼 큰 기사를 선배들과 함께 하면서 그래도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처절한 수습 생활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마냥 기자를 동경했던 언론고시 준비생을 기자로 탈바꿈시키는 수습 과정의 필요성 자체를 그래서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재의 시스템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무너지는 자존감과 몰려오는 자괴감 속에서 배우는 것도 분명히 있긴 하겠지만, 그로 인해 수반되는 감정의 골과 마음속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당장 10월이면 신입 기자가 들어온다. 아직 내 한몫 하기도 바쁜 상황인데, 후배까지 책임지고 후진 교육이라는 ‘대과업’을 맡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수습 시절, 매일같이 맘속으로 되뇐 ‘나는 후배 들어오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잘 해줘야지’와 같은 다짐을 지킬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언론계 안팎으로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내부 구성원들도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지 치열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수면시간을 내걸어 수도권 전역의 경찰서를 돌게 하고 사건을 요구하는 식의 기존 수습 교육도 변화의 바람 앞에 서 있다. 좀 더 나은 수습 교육 방안에 대한 논의도 함께 시작할 때다.

 

Posted in 2018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