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은 기자로 만들어진다

수습교육 중 국과수 방문 일정

수습교육 중 국과수 방문 일정

수습은 기자로 만들어진다 

KBS 김지숙 기자 (사회2부)

“방문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도착할 때 그렇지 않으면 떠날 때라도 반드시 그렇다.” 소설 <나 아닌 다른 삶>의 한 구절인데요. 좋아하는 이를 만나는 것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즐거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그 방문은 끝나니까요. 소설가 김연수는 이 구절로 어떤 괴로운 순간의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를 권했습니다.
새벽에 경찰서를 돌던 5월에도 저 구절이 수없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제 등 뒤의 TV를 보거나, 대놓고 ‘기자가 싫다’며 불쾌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떠올랐습니다.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괴로운 방문이었지요. 하지만 돌아보니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단지 그 방문이 끝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자야 꿈을 꾼다?

당시 저를 비롯한 12명의 전국·지역권 취재기자들은 조를 짜서 주간·야간 취재를 번갈아 했습니다. 이른바 ‘사쓰마와리’지요. 이전처럼 경찰서 숙식을 하지 않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예컨대 오후 5시까지 경찰서로 출근한 뒤 다음 날 아침 8시에 마지막 보고 후 퇴근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면 출근 전까지는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바뀐 취재 환경과, 이전 수습 교육의 비효율성에 대한 선배들의 지적으로 올해 처음 도입된 방식입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무척이나 다행이었습니다.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 반성과 고민을 하고 공부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이었습니다. 동기들의 공통적인 의견이기도 합니다. 오후까지 쉰 후에도 시간이 남으면 공부를 했습니다. 선배들께서는 처음 저와 제 동기들을 경찰서로 보내기 전 ‘사건 기자 핸드북’이라는 선배들의 노하우 책자를 나눠주셨습니다. 틈나면 그걸 보며 어떻게 취재해서 기사를 쓸지 공부하거나, 야간 당직자 선배께 들었던 내용을 끄적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기자의 조건은 뭘까요?” 올해 초, 후지모리 겐 전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을 만날 기회가 있어 물었습니다. 후지모리 씨는 ‘인간적 공감성’을 꼽았습니다. 경청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취재도 잘 한다면서요. 종종 듣는 ‘상냥함은 체력’이라는 이야기와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새벽에 만난 몇몇 민원인분들이 생각납니다. 안타깝거나, 가끔은 장황할 때도 있었던 그분들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고, 그래서 서툴게나마 듣는 기자로서 단련될 수 있었던 것은 선배들께서 마련해주신 소중한 휴식 시간 덕분이었습니다.

지난달 2일 잠수교 앞에서 첫 중계차. 선배들의 조언으로 바지를 걷고 슬리퍼를 신었습니다.

지난달 2일 잠수교 앞에서 첫 중계차. 선배들의 조언으로 바지를 걷고 슬리퍼를 신었습니다.

타 봐서 다행이야, 중계차

“지금까지 잠수교에서,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수습이 끝나고 첫 임무는 호우 중계차였습니다. 첫 연결이 끝나고 생각한 건 ‘휴…. 교육 안 받았으면 정말 망했겠다!’는 거였습니다.

수습 중 저와 제 동기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중계차와 출연 교육이었습니다. 실제 상황처럼, 앵커와 중계기술팀 선배들께서 준비해주신 환경에서 미리 현장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한 동기는 식목일을 맞아 홍릉숲에서 숲의 중요성을 소개했습니다. 멋지게 마쳤는데 앵커로 나선 선배께서 돌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거기 보니까 저도 가고 싶은데요. 홍릉숲까지 가려면 서울 기준으로 얼마나 걸립니까?” “하아….” 대답 대신 이어진 동기의 탄식이 아직까지도 귀에 선합니다. 그 동기 뿐 아니라 저를 비롯한 많은 동기도 비슷한 수준의 중계와 출연을 했습니다. 만약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면 ‘KBS 방송사고’라며 유튜브에 공유됐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한번 제대로 연습을 해보고 피드백을 받는 등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다만 자연스러운 중계나 출연을 위해서는 한 번의 교육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동적이고 도전적인 중계를 하면 좋겠다는 피드백도 받았습니다. 지향해야 할 중계 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고 실제로 연습해보는 자리가 종종 마련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 수습들이 어떻게 기자가 됐을까?

‘수습은 어떻게 기자가 되는가’ 주제를 받고, 저희에게 어울리는 질문은 저 문장보다는 ‘아니, 그 수습들이 도대체 어떻게 기자가 됐을까?’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스스로 기자가 된다기보단 선배들이 만들어주는 면이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수습 중 꿈을 꾸며(?) 경찰서를 돌 수 있었던 것도, 엄혹한 중계와 출연의 세계를 미리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선배들께서 마련해주신 기회니까요. 머지않아 함께 일할 동료이자 후배가 될 수습들을 기자로 ‘되게’ 하는 요소는 선배 기자들과 수습 스스로의 고민들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까, 또 어떻게 하면 기대에 부응할까 같은 고민들 말입니다. 이렇게 함께 고민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뉴스를 만드는 일이기도 한 것 아닌가, 최근 자주 생각합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경찰서에서 쫓겨나는 고통보다는 기자가 되는 경험에 집중하게 해준 기회들이 모든 방문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준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Posted in 2018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