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기약 없는 생이별’ 그 잔인한 클리셰

‘기약 없는 생이별’ 그 잔인한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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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아영 기자 (정치부)

사실, 의뢰를 받은 첫날부터 고민스러웠습니다. ‘상투적’인 글을 쓰게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21번째 이산가족 상봉인데다, 소감 등 써야 할 내용은 대략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3박 4일간의 취재를 막 마무리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결국, ‘상투적’이지 않게 쓸 만한 무엇인가를, 저는 찾아왔을까요? 답은 ‘네’도 ‘아니오’도 아닙니다. 금강산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 깜박이는 커서를 보면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어쭙잖은 치기로 상황을 재단하려 했던 제 모습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이글은 그런 의미에서, 저의 반성이기도 합니다.

 

1~27번. 이산가족을 ‘마크’하다

8월 24일부터 26일, 금강산에서 21차 이산가족 2차 상봉 행사가 열렸습니다. 금강산이 북한
지역 취재인 만큼, 관례에 따라 공동취재단이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저는 방송 펜 기자 몫으로 할 당된 5명 중 한 명이었죠. 방송기자들은 우선, 첫 상봉에 앞서 담당 구역을 나눕니다. 1번부터 27번. 제가 사흘간 지켜볼 가족들의 테이블 번호였습니다.

 

첫눈에 왈칵…그리움을 토해낸 가족들

첫 상봉 순간을 지켜본 가족은 16번, 69살의 황보우영 씨 남매였습니다. 황보씨는 북측 누님(84, 리근숙)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서로 다른 이부 남매입니다. 남매 앞에 붙은 ‘이부’란 수식어는 그러나,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황보씨는 누이를 보자마자, 그리워했던 지난 세월을 토해냈습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남성의 거친 울음소리, 그 어떤 말로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황보씨는 70년 전 누이가 직접 한 자수도 꺼내 보여줬습니다. 흰 천이 누렇게 변색은 됐지만, 분홍색, 보라색 실의 색감은 여전히 고왔습니다. 리근숙 씨는 어머니의 유언을 전해 들으며 그 천에 주름진 얼굴을 묻고, 또 문질렀습니다. 딸의 손길을 느끼려고 몇 번이고 천을 쓸었을 엄마. 이제야 체온을 전한 딸은 그때의 엄마보다 이미 나이가 더, 훨씬 많이 들어버렸습니다.

 

70년 벽이 낳은 차이…알릴 수 없는 서글픔

이산가족 행사는 북쪽이란 상대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보도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연속성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또 방송 리포트의 형식상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취재한 영상에 담겼다고 해도, 충분히 풀어서 알려주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더 서글프게 느껴졌던 상황들도 있었습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누이를 만나고서도 체제 이야기만 하는 남동생, 누이는 그저 동생을 안쓰러운 듯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마지막엔 그저, 꼭 안아줄 뿐이었습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듣다가, 등과 손을 토닥토닥 쓰다듬는 가족들도 이곳저곳에서 보였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을 일일이 열거할 수야 없습니다만, 다만 어느 현장은 보기에 너무도 애달팠노라, 꼭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먼저 떠난 버스…마지막 큰절

26일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상봉 초반 이틀의 단체상봉에선 영상취재가 내내 허용됐습니다. 반면, 이날 작별상봉은 특수한 상황임을 고려해 초반 30분, 후반 15분만 제한적으로 방송 촬영이 허용됐습니다. 이후가 진짜 이별의 시간입니다. 남측 가족들은 북쪽 버스에 오르는 가족들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오열하는 가족들을 기자들은 지켜봤습니다. 건강하시라며, 또 만나자고 인사했지만, 기약 없는 이별이라는 것은 누구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라지는 버스를 눈에 조금이라도 더 넣겠다며 쫓아가고, 이미 떠나버린 버스 쪽을 향해 길바닥에 큰 절을 올리는
가족들 모습은 그래서 더 애잔했습니다. 복받치는 감정을 달래기 쉽지 않았습니다. 시뻘게진 눈으로 수첩에 메모하고, 쫓아다녔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풀단4

제21차 이산가족상봉행사 2차 상봉 방송공동취재단: 26일 북측 가족들의 버스 탑승 전, 취재가 제한됐던 작별상봉 시간에 촬영한 사진. 이때도 울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다.

 

이산가족상봉 풀단3

상봉행사 중 북측 보장성원들과의 대화: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행사가 진행됐고, 북측 보장성원들과 큰 마찰도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대화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기약 없는 생이별’…도돌이표, 언제까지

돌아오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가족들이 받은 폴라로이드 사진 얘기입니다. 2~3년 정도 있으면 서서히, 색깔이 날아가듯 이미지가 희미해진다고 합니다. 가족들에게 혹여, 한 번 더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러운 걱정도 들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두 번째(혹은 첫 번째) ‘기약 없는 생이별’의 상태를 겪는 상황일 테니 말입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가족. 행복하지만 마지막이 된 한 때의 기록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모습. 이것을 지켜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앵커 멘트, 리포트 기사에서 봐왔거나, 써왔던 ‘기약 없는 생이별’이라는 표현의 무게를 그간 너무도 몰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면적 생사확인, 서신교환, 고향방문, 상시 상봉의 필요성을 결국,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박경서 한적 회장이 남북이 연내 추가 상봉을 하는데 공감했다고 밝혔는데, 남북이 ‘합의’해서 꼭 성사되길 바랍니다. 공동기자단을 통해 많은 기자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in 2018년 9.10월호,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