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길목에 선 ‘수습기자 교육’

2018 방송기자

변화의 길목에 선 ‘수습기자 교육’
‘기레기’가 아닌 참된 ‘언론인’을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이 필요

SBS 한세현 기자 (탐사보도부)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날이었다. 두꺼운 외투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경찰서를 들어서며, 그 짧은 순간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아,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구나.’ 어금니를 꽉 깨물며 각오를 다졌지만, 그 각오가 처참히 무너지는 데까진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시간 단위 보고’는 24시간 동안 이어졌고, 휴대전화 배터리는 몇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선배들의 지시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다양한 어휘들로 내려왔다. 물론, 내용은 언제나 ‘미션 임파서블’ 수준이었다. 입사 전 수의사였던 나는 수습기자의 ‘수’는 익힐 수修가 아니라 짐승 수獸라는 말을 가슴 속 깊이까지 절감했다.

기자라면 누구나 이런 혹독했던 ‘수습의 추억(?)’은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잠을 못 자는 건 물론 선배에게서 욕설 혹은 모욕적 발언을 듣고, 심지어 사표까지 썼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밤새 경찰서를 돌며 보고하는 이른바 ‘하리꼬미’는 기자가 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로 여겨졌다. 수면과 식사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통제하며 한계 상황을 경험해야, 기자로서의 전투력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언론사史와 함께 해온 이런 수습교육 방식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을 의미하는 ‘워라밸’ 트렌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며 당연시되던 수습교육에도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 시대와 하리꼬미 폐지

변화의 핵심 동력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다. 기존 교육방식을 고수해선 법에서 규정한 ‘주 52시간 근무’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도적 변화에 더해, 기존 수습기자 교육방식이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이라는 다수 구성원들의 의견이 더해지며 취재현장에서 밤을 새는 ‘하리꼬미’ 폐지는 불가피해졌다.

실제로 당장 각각 지난 4월과 6월, 신입 기자 수습 교육을 시작한 KBS와 MBC는 하리꼬미를 없앴다. KBS는 첫 한 달 동안은 수습기자들을 주간 조와 야간 조(20시 출근-다음날 08시 퇴근)로 나눠 교육을 진행했다. 다음 두 달 동안은 68시간 범위 안에서 일반 기자들처럼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방식으로 교육했다. MBC도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7~8시에 퇴근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신, 야간취재 경험을 위해 1주일 동안은 주간취재 없이 야간취재만 진행했다. 아직 신입 기자를 선발하지 않은 SBS와 YTN도 하리꼬미를 없애고 주 68시간 안에서 교육할 방침을 정했다. SBS는 다양한 취재경험을 쌓게 해준다는 취지에서, 조근-일근-야근 3가지 근무 형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물론, 하리꼬미 폐지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경찰서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극한 상황을 겪으며 기자로서 빨리 성장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하리꼬미를 폐지한 KBS와 MBC 관계자들은 “일부에서 취재원을 사귈 시간이 줄어든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별다른 허점이나 교육이 허술했다는 점은 느끼지 못했다”고 전했다. 오히려 “억압적인 도제식 교육방식이 비판적 사고가 부족한 기자를 만든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그런 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보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결국, 시대적 상황과 법 제도의 변화를 고려할 때, 하리꼬미는 폐지는 기정사실로 보인다.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도입

하리꼬미를 대명사로 하는 도제식 교육의 빈자리는 다양한 실무교육이 대신하고 있다. SBS는 지난해부터 취재·영상기자는 물론 편집기자, 아나운서, CG 디자이너, 사내 변호사, 외부 자문교수 등이 수습교육에 투입되고 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취재 및 기사 작성, 취재원 관리, 출입처 적응, CG 제작, 정보공개 청구, 뉴스 리포팅, 뉴미디어 활용법, 언론법 강의 등을 진행했다. KBS와 MBC도 올해 수습교육 때 이와 같은 실무 교육을 강화했으며 여기에 중계, 스튜디오 출연, 방송기술 업무 프로그램 편성, 탐사보도 교육 등도 진행했다. 최근 새로 꾸려진 YTN 보도책임자들도 “수습기자들의 교육 시간이 짧아진 만큼 체계적이고 효율적 교육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라며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할 것으로 밝혔다.

취재 윤리 및 인권 교육 강화

이와 함께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게 취재윤리 및 인권문제다. KBS는 올해 진행한 수습기자 교육 중 “취재과정에서 법과 규정을 지키고 ‘갑질’을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MBC도 “법에 저촉되거나 문제가 될 만한 무리한 취재를 하지 말고, 관련 규정을 지키라”고 가르쳤다. SBS도 지난해 법학박사(언론법)인 심석태 본부장이 직접 수습기자들을 대상으로 취재윤리 교육을 강의했고, YTN도 이런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 이는 최근 기자들이 성 추문 사건을 일으키거나 수사 중인 현장에 무단 침입했다가 입건되는 등 법적으로 처벌받을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 데 따른 조치다.

이와 동시에 언론 조직에 내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근절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MBC는 새벽 보고로 인해 수면권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과 억압적인 교육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캡이 수습기자들에게 욕을 하지 않고 수면권을 보장해주며, 강압보단 설득과 이해를 중심으로 지도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다른 언론사도 같은 맥락의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사회의 각종 권력형 비리와 갑질은 비판하면서 정작 내부에 존재하는 같은 문제에 침묵하는 우리 언론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에 대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

물론, 여전히 일부에선 이 같은 수습기자 교육 방침 변화에 대해 우려한다. 기자는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 사회에 끼치는 큰 영향력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 안에 교육 효과를 최대로 끌어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도제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해외 선진국처럼 ‘저널리즘 스쿨’ 같은 언론인 양성기관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입사 뒤 수습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최근 이뤄지고 있는 시대적 변화를 고려할 때 수습기자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언론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다소 식상한 얘기일 수 있지만, 교육이 백 년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단순한 상명하복이 아닌 선배들이 쌓아온 노하우와 철학, 경험을 전해줄 수 있는 진짜 교육을 어떻게 이뤄갈지 모든 언론인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Posted in 2018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