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회 기획보도부문_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_뉴스타파 신우열 기자

2018년 초. 독일북부방송(NDR, Norddeutscher Rundfunk)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에 공동취재 요청을 해 왔다. NDR 취재진은 지난 1월에 세계 학자들을 대상으로 ‘해적질’을 하는 단체 중 하나인 와셋(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잠입 취재를 했다. 이 과정 중 NDR 취재진은 젊은 한국 학자들의 와셋 학술대회 참석 빈도가 높다는 것을 깨닫고 뉴스타파에 연락을 했다. 뉴스타파가 이 사안의 보도 가치를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와셋은 한국 학계가 묵혀 온 깊고 복잡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뉴스타파 와셋 탐사보도의 시작점은 와셋 웹사이트였다. 와셋은 그 웹사이트에 학술대회 발표문의 초록들과 학술지 게재 논문들을 아카이빙하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를 웹 스크래핑해 한국 학자들의 와셋 참석 현황을 데이터화했다. 와셋 논문 투고자 수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5위. 상위권 저자 목록에는 한국인들이 수두룩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와셋 학술대회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잠입 취재를 했다. 취재진은 자동 논문 생성 프로그램인 사이젠(SCIgen)을 이용해 가짜 논문을 만들었다. 이를 와셋에 투고한지 4일 만에 학술대회 초대장이 날아왔다. 취재진은 이탈리아 베니스의 학술대회장으로 향했다. 와셋 학술대회는 엉망이었다. 자연과학부터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온갖 전공의 학자들이 한데 모여서 발표를 했다. 생산적인 학술 토론은 불가능했다. 뉴스타파 연구원은 가짜 논문을 토대로 발표를 해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취재진은 한국 학자 세 명을 현장에서 만났다. 이 중 한 명은 발표 자료도 없이 2분 동안 자기소개만 했다. 이들은 와셋 학술대회에 국가 연구개발비로 왔다고 했다. 심지어 한 국립대 교수와 그의 제자들은 발표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취재진은 이 교수의 명찰이 학술대회장에 마련돼 있었다는 점을 통해 그가 학술대회 등록을 한 뒤 불참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취재진은 귀국 후 추가 취재를 통해 이들이 학술대회 참석차 베니스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학술대회 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국내에서 와셋 참석자들을 취재해 보니 학계의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일부 교수들은 자신들이 지도하는 학생들의 낮은 수준을 탓하며 영어발표 기회를 줘 격려를 해 주기 위해 와셋 학술대회에 참석시켰다고 말했다. 와셋 학술대회 참석 경험이 있다는 교수, 대학원생들 중 일부는 와셋이 정상적인 학회라고 평했다. 연구의 질보다 양을 중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실적 위주의 연구 풍토가 학자들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개발비가 동원되고 있었다.

뉴스타파의 보도가 드러낸 것처럼 와셋은 가짜 학회다. 학회는 학술 연구와 장려를 목적으로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단체다. 그러나 와셋은 학문 발전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다. 와셋은 오로지 와셋 운영자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반복적으로 국가 연구개발비를 사용해 와셋에 투고하고 학술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결국 해적 비즈니스의 소비자로 자신의 격을 낮춘 셈이다.

학계는 성역이다. 학계의 비밀이 세상에 드러난 적은 많지 않다. 이번 보도를 통해 드러난 비밀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학계 구성원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일한 연구 관리 당국, 실적 중심주의에 휘둘리는 대학 등의 연구기관들, 규범적 기준이 오작동하는 학계, 부끄러움을 모르는 교수들과 그들을 닮아 가는 대학원생들. 이들의 무책임이 얽히고설켜 오늘도 가짜 학문은 성행한다. 뉴스타파가 가짜 학문 문제를 계속 취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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