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북미정상회담 취재기] 싱가포르 ‘사슴앓이’

싱가포르 ‘사슴앓이’

YTN 강정규 기자 (통일외교안보부)

북미정상회담

2018년 6월 10일 일요일, 현지시각 오후 2시 36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발을 디뎠다. 홀가분한 표정의 김 위원장 뒤로 ‘AIRCHINA’라고 적힌 보잉-747 특별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전용기인 ‘참매 1호(IL-62M)’는 그로부터 1시간 뒤에야 착륙했다. 첩보작전 같았던 비행 동선은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기사로 쓰지 못했던 뒷얘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김정은 ‘공군 1호기’ 탈 뻔했다?

사전 협상 과정에서 북한은 끝까지 싱가포르행에 난색을 표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호 문제 때문이다. 무엇보다 낡은 참매 1호가 4,700km의 비행 거리를 감당할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가 컸다. 심지어 북한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에 회담 취소를 통보한 이후에도 판문점 개최로 방향을 틀어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회담이 백지화됐으니 장소도 원점에서 논의하자는 논리였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깜짝 개최된 뒤에는 더 솔깃한 얘기가 들려왔다. 서훈–김영철 라인에서 김 위원장의 경호 문제를 긴밀히 상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특별기를 빌려주기 위해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가 도색을 새로 했다는 설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나란히 ‘공군 1호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갈 거란 말까지 돌았다. 청와대도 싱가포르에서의 ‘남북미 종전선언’에 기대를 걸고 있을 때였다. 믿을 만한 취재원의 말이었지만,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남북 관계가 좋아졌다지만, 자존심 강한 북한이 남한 전용기를 빌려 타려고 할까?

교차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민감한 문제라 사전 확인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김정은은 중국 특별기를 빌려 타고 싱가포르에 나타났다. 남한에 의지한 건 아니었지만, ‘참매 1호’를 고집하지도 않았다. 자존심보단 안전이 먼저였던 것이다. 우리 전용기를 빌리려 했다는 말 역시 허황된 얘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싱가포르 취재의 3대 복병

싱가포르 경찰

① 경찰

언론은 약하고 공권력은 강한 싱가포르에서 한국 취재진과 현지 경찰 사이의 마찰은 최대 복병이었다. 특히 큼직한 촬영 장비를 갖고 다녀야 하는 방송은 어려움이 더 컸다.

“YTN 강정규 기자, 싱가포르 현지에서 허가 없이 미군시설 촬영했다가 CCTV 포착된 차량번호 추적으로 검거”

초년 기자 시절, 경찰서를 내 집보다 더 많이 드나들었지만, 직접 사건의 당사자가 된 적은 없었다. 기사와 ‘찌라시’의 주인공이 된 것도 낯선 경험이었다. 위의 속보성 찌라시의 경우, 우리 출장팀이 경찰서에 도착하기도 전에 돌고 돌아 나한테까지 왔다. ‘발 없는 말이 이렇게 빠르구나!’ 그러나 실명으로 거론된 것과 달리 나는 경찰 조사를 직접 받지 않았다. 동행했을 뿐이다. 그리고 ‘검거’가 아니라 ‘자진출두’였다.
5월 19일, 사전 출장 명목으로 싱가포르에 갔을 때였다. 그날 YTN 취재팀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착륙할 예정인 파야레바르 공군기지를 촬영했다. 자료 그림 확보용이었다. 기지 앞은 경계가 삼엄해 기지 외곽에 있는 민간 건물 옥상에서 찍었다.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어 시간 뒤 경찰이 현지인 운전기사를 통해 연락해 왔다. 공군기지에 왜 다녀갔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경찰 조사는 촬영기자 선배가 받았다. 조사관 책상엔 우리의 동선이 실시간으로 기록된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CCTV에 찍힌 차량 번호를 역추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빅 브라더’ 시티였다. 큰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것과 옷차림까지 적혀 있었다니, 아마도 공군기지에서 우리가 있던 건물 옥상을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영상을 삭제해 주는 선에서 조사는 마무리됐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앞서 경찰 조사를 받은 방송사 3곳 중에 한 곳이 우리와 똑같은 사례였다. 그 매체는 방송에 썼던 영상까지 삭제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취재 활동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② 돈

돈도 현지 취재의 발목을 잡는 요소였다. 가뜩이나 비싼 싱가포르 물가도 그렇지만,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로 정해진 뒤 천정부지로 치솟은 항공료와 숙박비 부담이 컸다. 출장 인력을 마음껏 늘리기 어려운 구조라, 현지에 파견된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의 몫을 해야 했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가 마련한 미디어센터의 사용료가 가관이었다. 책상 2개짜리 부스 하나를 빌리는 데만 우리 돈으로 650만 원이 넘었다. 회담 장소인 카펠라 호텔 지붕이 살짝 보이는 중계 포인트의 경우 하루 이용료가 무려 1600만 원이었다. 여기에 영상 송출에 필용한 인터넷 요금도 별도였다. 방송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미디어센터에만 수천만 원을 쏟아 부어야 했다.

우리 정부는 취재지원 명목으로 현지에 ‘코리아 프레스센터’를 열었다. 그러나 공지가 너무 늦었다. 이미 싱가포르 정부의 미디어센터 예약이 끝난 뒤였다. 기자들은 뒤늦게 국제전화를 붙잡고 환불해달라고 읍소해야 했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이 한차례 취소 소동을 겪은 탓일까? 계약서엔 ‘환불 불가’라는 독소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참고로 4.27 남북정상회담 때 킨텍스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는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들에게도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YTN 갈무리2

③ 폭염

대형 사건사고나 북한 핵실험과 같은 빅뉴스를 취재하다 보면 잠 못 자고 밥 못 먹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번 싱가포르 취재에선 혹 하나가 더 붙었다. 적도의 폭염이다. 특히, 베일에 싸인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을 쫓느라 몇 날 며칠 뙤약볕과 찜통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어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목덜미에 땀이 줄줄 흘렀다. 무거운 촬영 장비까지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온몸이 끈적거렸다. 수분이 대부분 땀으로 배출돼서인지 화장실 갈 생각은 별로 안 났던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해외에서의 인터넷 속도 때문에 실시간 영상은 물론 기사 검색도 어려웠다. 노트북도 더위를 먹었는지 수시로 먹통이 됐다. 배터리가 방전된 뒤에는 휴대폰을 두드려 기사를 썼다. 역사의 현장을 지킨다는 명분은 거창했지만, 현실은 ‘싱가포르 사슴앓이’였다.

Posted in 2018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