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세계탁구선수권대회 취재기] 27년만의 탁구 남북 단일팀 “우리는 하나”

27년 만의 탁구 남북 단일팀, “우리는 하나”

KBS 박선우 기자 (스포츠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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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선수들이 세계단체탁구선수권 8강전을 앞두고 어깨동무를 하더니 탁구대 앞으로 함께 다가섰다. 손을 흔드는 모습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곧바로 장내 아나운서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 남한도 북한도 아닌 하나 된 코리아”라고….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 이후 27년 만에 남북 단일팀이 깜짝 결성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치열한 승부 대신 손을 맞잡은 남과 북의 선수들은 나란히 4강에 오르게 됐다.

하루 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대회가 열리는 할름스타드로 향하는 기차에서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다. 저녁에 열릴 행사에서 남과 북의 선수들이 깜짝 퍼포먼스를 펼칠 계획이라는 유승민 IOC 선수위원의 메시지였다. 때마침 북한 여자대표팀이 러시아를 이기고 16강에 올라 8강전에서 남북 대결이 성사된 상황이었다. 그날 밤 국제탁구연맹 행사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이벤트로 남북 선수 두 명씩이 등장했다. 남과 북의 선수가 복식조를 이뤄 5점 경기를 치렀는데 전 세계 탁구인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남측의 양하은이 실수하자 같은 팀인 북측의 최현화가 아쉬워했고, 북측의 김남해가 공격에 성공하자 곁에 서 있던 남측의 서효원이 환하게 웃었다. 네 명의 선수들은 그동안의 서먹함을 털어내고 오랜 친구처럼 이벤트 매치를 즐겼다. 경기장에서 기자들을 피해 다녔던 김남해도 비로소 우리 카메라 앞에서 말문을 열었다. “같은 민족이라 편하고 좋았습니다. 함께 힘내서 다가올 아시안게임에서 꼭 1등했으면 좋겠습니다.”

긴박했던 단일팀 결성 과정

밝은 분위기 속에 유승민 IOC 위원과 북한의 주정철 선수단장, 국제탁구연맹의 토마스 바이케르트 회장은 행사 직후 긴밀하게 대화를 나눴고, 8강전에서 만날 남과 북의 단일팀 결성이라는 극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스웨덴과 국내의 시차 때문에 남과 북의 관계자들은 양국 정부와 체육회 등의 동의를 얻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긴박한 시간을 보냈다. 4강전 상대가 될 일본 등 다른 팀들의 양해를 구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북한도 달라진 남북 관계를 반영하듯 생각보다 빠른 결정이 이뤄졌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합의 장면이 연출된 지 불과 일주일도 안 돼 단일팀이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경기가 열리기 불과 두 시간 전에 최종 결정된 것이다. 경기장에서는 남북 선수들이 함께 셀카를 찍으며 역사적인 순간을 실감했다. 관중의 커다란 박수 속에 경기를 치르지 않고 퇴장한 남북 선수들을 기다리는 것은 뜨거운 취재 열기였다. 개최국인 스웨덴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홍콩 기자들이 이들의 소감을 듣기 위해 몰렸다. 선수들은 서로 껴안으며 한 팀이 된 것을 자축했다. 남측의 양하은은 “역사 속에서만 듣던 단일팀이었는데 자신이 그 단일팀이라는 역사 속에 다시 있게 돼 영광스럽다”는 벅찬 소감을 밝혔고, 북측의 김송이는 “긍지와 자부심이 느껴진다”며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로 각오를 드러냈다. 기쁨도 잠시, 남과 북의 선수들은 오후가 되자 곧바로 합동 훈련에 나섰다. 서로 훈련 파트너를 맡아 랠리를 주고받았고, 수비형 선수인 서효원과 북한의 김송이는 라켓을 바꿔 연습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안재형 감독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된 만큼 후회 없는 멋진 경기를 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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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일팀 한일전 출격…“하나 된 코리아”

단일팀 결성 하루 만에 치러진 강팀 일본과의 준결승은 역시 어려운 경기였다. 하지만 단일팀 코리아가 점수를 올릴 때마다 선수들은 다 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뜨거운 응원을 보냈고, 실점할 때는 함께 아쉬움을 달랬다. 제2단식에 나선 북측의 김송이는 일본 최고 스타인 이시카와 카스미와 5세트 듀스까지 가는 접전으로 명승부를 연출했다. 경기 결과는 3대 0 패배였지만 값진 동메달을 따낸 선수들은 대형 한반도기에 각자의 이름을 남기며 잊지 못할 순간을 기념했다. 안재형 남측 감독은 독도, 북측 감독은 백두산 근처에 사인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진 시상식에서도 남북 선수들은 번갈아 가며 시상대에 오른 뒤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며 깊은 우정을 다졌다. 귓속말을 나누고 농담을 할 정도로 친해진 선수들은 전광판에 나란히 표시된 태극기와 인공기를 지켜봤다. 국제탁구연맹도 단일팀의 숨가빴던 여정이 역사적인 순간이었다며 하나 된 코리아를 화합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대회가 끝나고 남북 단일팀에게도 작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북측 선수들이 먼저 떠나게 되자 우리 선수단은 따뜻한 환송으로 마지막을 함께 했다. 다음에는 남자도 단일팀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김택수 남자 대표팀 감독의 기분 좋은 제안도 이어졌다. 남측의 유은총과 부쩍 가까워진 북측의 김송이는 유은총에게 “다음에 볼 때까지 열심히 훈련 잘하고 화장도 잘해서 더 고와지고 더 높은 기술을 갖춰 다시 만나자”는 말로 웃음을 선사했다. 선수들은 곧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고, 북측 선수들이 탄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선수들의 바람과 달리 당장 아시안게임에선 단일팀 구성이 어렵게 됐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가 남북 단일팀 엔트리 확대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고, 한 팀이 된다면 이미 선발된 선수를 제외해야 하는 피해를 볼 수는 없어서 대부분의 종목이 의사를 철회했다. 탁구 역시 마찬가지여서 사실상 드래곤보트 한 종목만 단일팀이 결성될 것으로 보인다.

27년 만에 하나가 돼 짧지만 강렬한 우정을 나눴던 남북 탁구 단일팀은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감동을 연출했다. 앞으로도 남북 스포츠 교류 활성과 이후 더 많은 종목에서의 단일팀 구성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어 의미 있는 출발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Posted in 2018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