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마기] “가슴만 뜨거운 채 겁 없이 뛰어든 선거”

 “가슴만 뜨거운 채 겁 없이 뛰어든 선거”

박수택 전 S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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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3일 제7대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고양시장 후보 기호5번 정의당 박수택’

겸연쩍고 어색했다. 취재 현장 뛸 때야 당당했지만, 공직 후보자는 그럴 수 없다. 미소 띤 얼굴, 상체를 숙여 겸허한 자세로, 악수할 때는 두 손으로 손을 감싸듯 쥐어야 한다. 후보자는 ‘갑, 을’도 못 되고 ‘병’이나 ‘정’쯤 된다더니 과연 그랬다. 새벽 5시 반 기상, 면도하고 복장 갖춰 입고 출근길 인사, 지역 직능단체 방문, 사회복지시설·경로당 순회 인사, 마을 장터나 축제 마당 찾아 명함 돌리기, 저녁에는 퇴근길 인사, 끝나고 점검회의는 심야까지 이어진다. 방송 언론인 출신이라도 지역에선 얼굴 알려지지 않은 신인 후보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타의로 방송화면에서 밀려난 지 7,8년 지났으니 무명이나 다름없다.

지원 유세 나온 유명 정치인이 마이크 잡고 사자후를 토할 때면 옆에서 팔이 저리도록 손을 흔들어야 했다. 지역신문과 케이블방송 토론에서는 호평을 얻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는 시민도 늘었다. 시민의식 높다는 곳이니 기대할 만하지 않겠는가. 결과는 4만1천48표, 득표율 8.36%로 시장 후보자 4명 가운데 3위. 선거 비용의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는 득표율 10%에도 이르지 못 했다. 낙선이건만 창피하다거나 원통하다는 마음은 없다. 담담할 뿐, 잔치 굿판 신명나게 치른 것처럼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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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수정당 후보로 지방선거에?…‘시민들의 한숨, 아기 엄마들의 눈물’

거대 정당 틈바구니에서 소수 정당 간판으로 어쩌자고 나섰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고양에 터 잡은 지 18년째, 인구는 100만이 넘어 대도시가 됐는데 변변한 일자리 자족기능을 못 갖춰 활력을 잃었다. ‘도농복합의 쾌적한 전원도시’라더니, 거대 양당 출신 시장들이 이끈 지난 16년 사이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난개발 지옥으로 전락했다. 쓰레기 불법 투기와 소각, 그린벨트와 농경지 훼손, 누더기 도로, 공사장과 영세 사업장에서 뿜어내는 먼지와 유해물질…. 기본적인 관리조차 안 됐지만 생색내기 행사는 즐비하다. 수백억 원을 들여 지은 쓰레기 소각장은 제 구실도 못하는데, 다이옥신 유해물질 내뿜는 굴뚝 코앞에 높은 주상복합 단지가 병풍처럼 들어섰다. 앞뒤 안 맞는 모순 시정에 시민들 실망이 높았다.

3월 말, 미세먼지 대책을 호소하는 학부모 아기 엄마들과 경기도 교육청 간담회가 큰 정당 소속 도의원 ‘갑질’로 무산되고 말았다. 공무원들을 몰고 나가는 40대 새파란 도의원을 막아서다 옷이 찢기고 아기 엄마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올해 선거가 있으니 나라도 시의회에 나가서 이 문제 제대로 짚어 볼까요?’ ‘제발 그래 주세요!’ 아기 엄마들은 박수를 쳤다. 소식을 듣고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연락해왔다. 생각하는 가치와 뜻을 넓게 펴려면 시장 후보로 나서라. 당선되면 더없이 좋고, 안 돼도 뜻이 전달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했다. 자연보호 사회단체를 꾸리려던 계획을 접어두고 33년 4개월 언론인은 정년퇴직 두 달 남짓에 전혀 생소한 길로 접어들었다.

가슴만 뜨거웠을 뿐, 머리·손·발·호주머니는 빈 채로

낙선했지만 고양시에서 정의당은 타 지역보다 월등한 정당 득표율로 시의회 4석을 확보했다. 4년 전 2석에 비하면 약진한 것이다. 경기도의회에도 정당비례로 처음으로 2명을 들여보내게 됐다. 결산 모임에서 초선의 30대 남성 당선자는 머리를 굴렸을 뿐 유권자에게 가슴으로 다가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나는 어땠나? 가슴만 뜨거웠을 뿐 머리도 손도 다리도 없었다. 호주머니도 빈 채였다. 선거대책본부를 이끈 심상정 의원 김복열 보좌관은 활주로가 짧아 높이 날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경쟁 후보들은 수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해온 데 반해 나는 나선 지 2달도 채 안 됐고, ‘연료’도 부족했다. 그래도 고양에서 정의당 시장 후보가 처음 나와 8.36%, 4만1천여 표를 얻은 것은 선전한 것이며 존재감을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내가 정의당 선거 후보 대열의 빈틈을 채운 만큼 유권자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고 고양시의원, 경기도의원 당선에 기여했다는 데서 보람을 찾는다. 우리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는 이뤘으나 아직도 모자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정의다. 자유와 민주의 바탕 위에 정의를 바로 세워야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을 수 있고, 나라다운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법이다. 짧은 기간이나마 설파할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

박수택선임기자

공동체의 방향 설정, 구성원의 행복…‘언론과 정치가 다르지 않다’

선거를 치르며 ‘경청투어’를 다녔다. 사회복지계, 장애인, 노동, 환경, 교육, 보육, 외국인 노동자, 이주여성, 농민단체를 찾아 현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들이 바라는 바에 귀 기울였다. 기자 시절 익숙하게 하던 일이다. 시장의 일이란 게 결코 거창하지 않다. 시민 삶의 현장으로 다가가 보고 듣고 헤아려 문제를 풀어드리는 거다. 기자도 현장에서 보고 듣고 판단하는 취재 보도로 사회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한다. 정치인과 언론인의 직능은 다르지 않은 셈이다. 다만 위하여 복무할 대상을 공익 혹은 특정 사익에 두느냐에 따라 정치가냐 정치꾼이냐, 기자냐 ‘기레기’냐로 갈릴 따름이다. 언론 출신 정치인이라면 더더욱 돌아보고 살필 일이다. 언론 현직에서 얼굴과 필명을 날리다가 냉큼 집권당이나 유력 정당으로 낙하산 타고 내려가는 행태는 삼가야 한다. 언론에 대한 신뢰를 해치기 때문이다. 재직 중에 공직 선거에 나설 거라면 적어도 2년쯤 전에 스스로 펜과 마이크를 내려놓고 겸허하게 정치 입문자로 정당 활동을 하며 기반을 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큰 귀와 튼튼한 팔 다리를 키워야 한다. 자금을 모으되 보전 받지 못해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20년 동안 부은 노후용 개인연금 6천4백만 원을 합쳐 7천5백만 원이 두 달 사이에 사라졌다. 당 지원금 2천만 원과 후원회 모금 4천5백만 원까지 들어갔다. 지역 실상과 민심 동향을 파악했고, 정치판 속성과 선거 치르기, 공직자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었으니 수업료라고 여길 뿐이다. 수업료 내고 배운 바를 이어갈 것이냐, 평범한 시민으로 생활비 벌충할 일자리 찾을 것이냐, 기자 출신 낙선 후보는 갈림길에 서 있다.

Posted in 2018년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