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다운 앵커] 방송의 ‘꽃’이라고?…갈 길은 아직 멀다

방송의 ‘꽃’이라고?…갈 길은 아직 멀다

SBS 한수진 선임기자 (現 ‘한수진의 오 뉴스’  앵커)

SBS 한수진 앵커

30대 초반 나이에 얻은, 뜻하지 않은 별명이 있다. 한동안 나의 이름 석 자에 따라다녔던 ‘최장수 여女앵커’가 그것이다. 메인 뉴스 8년 차 앵커 무렵, 일간지 지면에 실린 나의 인터뷰 기사 제목이 바로 ‘최장수 여성 앵커’였다. 지상파 3사의 여성 앵커 가운데 8년간 메인 뉴스를 진행한 사례가 역대로도 없었다는 게 그 근거였다. 단 1보의 전진이라도 기뻐해야 마땅할 테지만, ‘8년 차의 30대 앵커’가 ‘최장수’라는 이유로 받는 스포트라이트 현상은 결코 즐겁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다. ‘30대의 최장수’야말로 ‘단명’하는 여성 앵커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비춰주는 것처럼 느껴져 오히려 씁쓸했다.

여전히 심각한 ‘뉴스 남녀’의 불균형

본론으로 들어가, 우리의 뉴스룸을 성 평등 관점에서 들여다본다면, 내가 매기는 점수는 여전히 낙제점을 겨우 면한 정도로 박하다. 30년 가까이 기다리고 지켜봐 온 구성원 입장에선 지금껏 변한 만큼보다 더 많은 변화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돼야 한다는 바람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시선을 앵커로 좁혀 봐도 그렇다. 남녀 앵커를 둘러싼 성 불평등의 구도는 워낙 단단해, 이제야 겨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정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5월 내놓은 방송모니터링 결과를 봐도,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와 출연진 등의 남녀 성비에서 심각한 성 불균형은 여전했다. 최고 9대 1까지 차이가 났다.

우리 뉴스에 비친 남녀 앵커 모습이 성불평등 구조의 상징처럼 되다시피 한 건 꽤 오래전부터였다. 이를테면, 여성 앵커들의 경우엔 ‘필요 이상으로’ 젊고 예뻐야 했다. 앵커의 ‘원산지’인 ‘천조국’에선 외모보다 전문성을 앞세운다는데, 물 건너오면서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그곳에는 또 이름을 날린 ‘할머니 앵커’들도 많던데, 여성 앵커의 적령기를 30대부터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여러모로 씁쓸하다. 아무래도 귤이 넘어와 탱자로 변하기라도 한 ‘토착화 과정의 변질’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앵커로 일하는 동안, ‘극강 미모’로 무장한 아나운서들의 쓰나미에 ‘극심한’ 외모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부끄럽게도, 비교하고 고민하고 비관하는 데 아까운 에너지를 쏟았다. 누군가 나를 평가했듯 ‘뉴스에 집중하는 데 방해되지 않는 얼굴’을 가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그런 것도,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다시 뉴스화면으로 돌아와서, 20대 여성 앵커가 아버지뻘 남자 앵커와 나란히 앉아 뉴스를 전하는 모습을 보자. 남자가, 최근에는 여자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뉴스도 늘었지만, 아직도 이런 식의 ‘앵커 조합’이 대세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조합이 성 역할의 차별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자 앵커가 중요한 뉴스를 도맡고, 논평과 앵커멘트 작성의 권한까지 전담하지만, 여자 앵커는 대개 그런 권한을 갖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남자 앵커는 오랜 취재경험을 가진 기자 출신이 맡는 데 반해, 여성 앵커는 외모와 인기가 뛰어난 여자 아나운서 중에 발탁되는 일이 많으니, 역할과 비중의 불균형은 인선의 출발부터 예고되는 면이 없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늘 그래왔던 것, 그러려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다. 꼭 그런 것도 아니다. 4번째 연임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가 13년째 총리직을 맡고 있는 독일에선 ‘원래 총리는 여자’인 줄 아는 아이들도 꽤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 메르켈 총리만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남자는 총리를 못 하냐’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총리도 앵커도 남성의 압도적 주도권을 알게 모르게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새겨들을 만한 풍경이다.

한수진오뉴스

‘진짜 최장수 여성 앵커’를 기다리며

여성 앵커가 주로 젊고 예쁜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꽃’이나 ‘보조’, ‘앵무새’에 비유되는 존재감으로 남는 건 이제 시대에 뒤처져도 너무 뒤처진 풍토다. 물론, 여성 앵커의 역할과 위치는 예전보다는 훨씬 커지고 좋아졌다. 그럼에도, 갈 길은 아직 멀다.

사회 각계에서 높아지고 있는 양성평등의 요구를 주도하진 못할망정 뒤처지는 건, 언론 종사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각오를 품고 50대를 일 년 앞둔 시점에서 다시 ‘현직 앵커’로 뉴스를 진행하게 되었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자주 느끼게 된다.

‘멋진 앵커’에 도전하는 여기자 후배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뜻을 일찌감치 품되, 현장에서 충분한 경험과 연륜을 단단히 쌓은 뒤에 앵커석에 앉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길을 열어주고 기다려주는 언론사도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들과 ‘할 말은 하는 앵커’로 교감하고 ‘앵커다운 앵커’로 언론의 신뢰도 되찾는 ‘진짜 최장수 여성 앵커’를 자주 보는 시대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

Posted in 2018년 7.8월호, 방송기자 성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