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4사 보도국 성평등 현황과 분석] 반쪽 세상만 보여주는 ‘방송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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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세상만 보여주는 ‘방송뉴스’

그 많던 여성 ‘언시생’은 어디로 갔을까?

SBS 노유진 기자 (정책사회부)

“목동 SBS로 가주세요.”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말하면 으레 돌아오는 물음이 있다. “거기는 무슨 일로 가세요?” 처음 기자가 됐을 때는 자랑스러운 마음에 “네, 저 기자예요”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게 됐다. 그냥 “일이 좀 있어서요….”라고 얼버무릴 뿐이다. 기자라고 대답하면 “여자가 기자를 하면 힘들지 않느냐”, “편한 직업을 택하지 왜 남자들이나 하는 직업을 선택했느냐” 등 돌아오는 대답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이런 반응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실제로 기자 직군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브리핑 장에서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브리핑하는 공무원도, 듣는 취재기자도, 촬영하는 카메라 기자도 모두 남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상황이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취재현장에 가더라도 여성 기자보다 남성 기자가 월등히 많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SBS의 여성 기자 비율은 보도국 전체 구성원의 약 18%에 불과하다. 5명 중 1명만 여성 기자라는 것이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이른바 ‘언시생’들 사이에서 여성을 많이 뽑기로 유명한 KBS 역시, 여성 비율은 약 25%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사실 여부를 떠나, 기자 지망생들도 ‘대다수의 언론사가 여성 지원자보다 남성 지원자를 선호한다’라고 믿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낮은 여성 기자 비율이 가진 문제는 취재 현장뿐 아니라 편집회의에서도 드러난다. 하루에 몇 차례씩 어떤 기사를 발제하고, 기사를 어떻게 다룰지 논의하는 편집회의에서도 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편집회의에 참석하는 부장단의 대다수도 남성 기자다. 언론사별로 보면, 팀장 이상 여성 보직자의 비율은 MBC 10.2%, SBS 9.5%, YTN 6.8% 등이며 KBS도 18.3%에 불과하다. 뉴스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여성이 적으면, 그만큼 우리가 전하는 뉴스에는 여성의 시각이 담기기 어려울 수 있다.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현실을 재현하는 뉴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여성의 시각이 배제된 뉴스가 다시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여러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밝혀졌듯, 대중매체는 현실구성효과(Constraction of Reality)를 내포하고 있다. 즉, 대중매체가 묘사한 현실이 실재하는 현실과는 다를지라도, 시청자들은 TV가 보여주는 현실을 진짜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결국, 남성적 시각이 지배적인 뉴스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 뉴스가 보여주는 사회를 현실로 인식하고, 남성 중심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기사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남성지배적인 프레임은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 프레임 속에 뉴스는 그동안 여성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중화장실에 설치된 몰카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혹시 내가 간 화장실에 몰카가 있는 건 아닐까?’ 여성들이라면 한두 번쯤 생각해 봤을 문제다. 심지어 여성들은 화장실에 누군가 숨어 있다가 나를 해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자주 갖게 된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우리 사회 여성들이 언제나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문제임에도, 정작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이러한 문제점들이 보도되는데 그마저도 일회성이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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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여성’들의 고민

최근 정부가 ‘몰카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언론들은 ‘정부 몰카 집중단속’, ‘몰카 영상 지우기 정부가 나서’ 같은 기사를 앞다퉈 내보내고 있다. 이제라도 언론들이 이러한 보도를 하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정부가 나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충분히 다룰 수 있었던 이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이런 아쉬움 없이 우리 사회 반을 구성하는 여성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선제적으로 보도하기 위해서는 그런 문제들을 직접 겪어 본 여성들의 시각이 필요하다.

최근 방송사에 여성 ‘캡’들이 배출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가장 밑바닥부터 사회 저변을 다루는 사건팀의 캡 자리를 여성이 맡는다는 건 그만큼 이제 우리 방송사 보도국도 변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미국의 라디오 텔레비전 디지털 뉴스 협회(RTDNA) 자료를 보면, 미국 전역의 방송사 보도국 인력이 44.2%가 여성이고, 방송사 보도국장들 가운데 1/3이 여성이다. 특히 상위 25위 이내의 대도시 소재 방송국의 여성 보도국장 비율은 45%에 가깝다.

물론 이런 통계적 수치만으로 미국 방송사들의 뉴스가 여성들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우리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보도국 내에서 더 많은 여성 보직자가 생겨나고, 여성 국장도 많아지길 바란다. 여성 국장 앞에 더는 ‘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 시기가 올 때 우리가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기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균형 잡힌 뉴스일 것이다.

Posted in 2018년 7.8월호, 방송기자 성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