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노트] 균형감각

다음은 한 기자가 해외출장 중 겪은 이야기입니다. 독일 슈피겔지 기자가 호텔 방에서 TV채널을 돌리다 한국 걸그룹이 춤추는 K팝 프로그램을 봤답니다. 그는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한국 기자를 찾아 진지하게 묻습니다. “명백한 성 상품화인 데다 심지어 10대 어린 여성들이다. 춤 동작 속에 성적 혐오까지 역력해. 너희는 이걸 좋다고 보니? 공동체에서 허용이 되니? 믿을 수가 없다.” 슈피겔지 기자의 표정에는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평소 TV에 걸그룹이 나오는 걸 볼 때마다 망측스러워 채널을 피하곤 했던 한국 기자는, 창피하고 할 말이 없어 술만 들이켰다는 이야기입니다.

해외 유력지 기자가 느낀 이 황당함은 한류의 또 다른 면입니다. 시청자들께 즐거움을 전하려 애쓰시는 예능 종사자분들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건 아닙니다. 적지 않은 보도 종사자들이 한류의 한쪽 면만을 보고 기사를 써왔다는 점을 통해, 꺼내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방송기자> 7, 8월호 특집에서는 사안의 여러 측면을 두루 보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 안의 불균형’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불편해도 지나쳐야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야 하는 조직적 분위기를 공론화하는 것, 즉 미투(#MeToo) 정신과 함께 회복해야 하는 젠더 인식의 균형입니다.

성차별과 관련해 ‘이만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분들께 각사 여성 동료들이 마음을 담아 눌러 쓴 이번 호의 원고들을 꼼꼼히 봐주시길 추천드립니다. 이 빛나는 원고들은 남성들이 나쁘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만드는 불균형이 문제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이슈들을 따라 성차별과 관련한 의미 있는 보도가 늘고는 있으나, 정작 내부의 문제에 둔감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기회가 되기를 감히 기원해봅니다.

송형국 편집위원장

Posted in 2018년 7.8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편집자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