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듣지 않던 목소리를 듣다”_KBS 특별취재팀 ‘듣다’

방송기자42호_듣다

“듣지 않던 목소리를 듣다”
KBS 특별취재팀 <듣다>의 실험

KBS 윤봄이 기자 (사회부)
KBS 권준용 기자 (영상취재부)

 

‘듣다’ 는 KBS 새노조 파업 때 결성된 기자협회 ‘특별취재팀’ 이 만든 인터뷰 전문 영상 콘텐츠다. 차별과 편견,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맞서는 사람들,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를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인터넷 기반 콘텐츠로 KBS 뉴스 홈페이지와 SNS 계정을 통해 공개했으며, 일부는 방송용으로 다듬어 ‘뉴스9’에 방영했다.

우리는 ‘들어야’ 했다

우리 팀 사무실 벽에는 ‘차별’과 ‘편견’ 두 단어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KBS 새노조의 긴 파업이 끝나고 ‘과도기 체제’로 넘어가던 날, 기자협회 특별취재팀으로 활동하던 우리는 탐사보도팀이 사용하던 옛 사무실에 짐을 풀었다. 그때 팀장 선배가 벽에 붙인 것이다. ‘차별’ 받고, ‘편견’에 시달려온 사람들, 그에 맞서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자. 우리 뉴스가 외면했던 목소리를 듣는 것, 그게 출발이었다.

‘듣다’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미투’에 동참한 성폭행 피해자들, 연극 무대에 오른 세월호 엄마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 탈북자, 선거권을 요구하는 청소년, ‘열린’ 청와대를 상상하는 건축학도들까지. 민감하거나, 복잡하거나, ‘뉴스성’이 떨어지거나, 한쪽만 들어줄 수 없다는 이유로 그간 외면했던 사람들이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의 어머니들을 찾아가던 날, 그 무거운 발걸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죄스러운 마음에 눈을 제대로 마주치기가 힘이 들었다. “왜 이제야 왔느냐. 늦어도 너무 늦었다”며 차갑던 어머니들은, 막상 카메라 앞에 앉자 저 깊은 속마음까지 털어놓아주었다. 그 목소리를 듣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반쯤은 숙제를 하는 마음이었다. 입사 4년차, 선배들이 말하는 ‘비정상’적인 KBS에서 일하면서 제대로 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한 해 한 해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부채 의식을 이번에는 떨쳐야 했다. 이제 그 목소리들을 반드시 들어야 했다.

오로지 그들의 목소리만을

‘듣다’팀에게는 형식의 실험도 필요했다. 이야기를 충분히 담아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일반적인 뉴스 리포트는 어울리지 않았다. 기자 목소리를 빼고 오로지 인터뷰이의 목소리만을 담았다. 인터뷰이의 말과 표정, 떨림을 담아내는 데에 집중했다. 굳이 기자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의 목소리만으로도 힘이 있었다.

‘성공 공식’이라는 1분 20초 리포트 길이도 과감히 버렸다. 지루할 거라는 우려가 있었음에도 영상 길이를 5분에서, 길게는 10분까지 늘렸다. 이야기를 다 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 덕에 여느 뉴스 리포트라면 ‘짜깁기’한 10여 초밖에 안 나갔을 누군가의 목소리는 맥락이 삭제되지 않은 채로 나갈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과정 역시 ‘이야기 듣기’가 최우선이 됐다. 카메라를 여러 대 사용해 작은 표정과 몸짓 변화까지 잡아내려고 했다. 기자의 개입은 최소화했다. 5분여의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 길게는 3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다. ENG 카메라 두 대, 오디션캠 한 대, 50GB 메모리디스크를 4장이나 사용했다.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 몸은 힘들었지만, 인터뷰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건 아이템 특성상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평소처럼 시간에 쫓겨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면 충분할 것 같아요”라고 말을 잘랐다면 이 정도 깊이의 말과 감정을 담지 못했을 것이다.

‘듣다’팀, 미완의 실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건 ‘듣다’팀 특유의 분위기 덕분이기도 했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군대 같은’ 조직이라고들 하지만 ‘듣다’팀만은 예외였다. 다양한 연차의 기자들이 모여 가감 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이템마다 모든 팀원이 함께 고민했고 어떤 아이디어도 소홀히 취급되지 않았다. 무리수로 보일 수 있는 막내들의 의견도 적극 수용됐다. KBS 내부의 미투를 비롯해 평소라면 만들기 어려웠을 아이템도 제작할 수 있도록, 선배들은 기꺼이 방패가 되어 줬다.

취재기자와 촬영기자의 호흡도 중요했다. 팀 결성 때부터 취재, 촬영기자가 함께 해 <듣다> 팀이 가야할 방향과 목적을 공유했다. 아이템 전반의 분위기, 인터뷰 내용, 타이틀을 비롯한 그래픽, 배경음악, 인터뷰 장소까지 수차례 회의를 거쳐 신중하게 고민했다.

과도기 KBS의 임시 취재팀이었던 <듣다> 팀은 뉴스 정상화와 함께, 활동 3달 만에 해체했다. <듣다>팀에서 함께 했던 취재기자 6명과 촬영기자 3명은 다음을 기약한 채, 각자의 부서로 돌아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뉴스를 만들고 있다.

짧은 활동 기간, ‘듣다’ 로고를 달지 않은 파일럿 아이템 3편을 포함해 모두 13편이 나왔다. 인터뷰에 나선 분들이 어려운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 덕에 제법 울림 있는 결과물들이 나왔다. 반응도 좋다. 공개한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영상 조회수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지속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KBS 뉴스에 단단히 뿌리내리기에는 부족했지만, 작은 씨앗은 심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야 하고 그 목소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기자들 마음에 물음표를 남긴 것이다. <듣다>가 아니더라도 이런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아직도 귀 기울여야 할 절박한 목소리들이 넘쳐난다.

Posted in 2018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