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와 프레임] 평화라는 틀과 ‘변화한 북한’ 이라는 팩트

평화라는 틀과 ‘변화한 북한’이라는 팩트
이념에 갇혀 언론이 무시했던 정보들

김진혁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방송기자42호_남북정상회담_북한장마당

오랫동안 남북문제를 보는 틀은 ‘이념’이었다. 빨갱이란 말로부터 출발해 친북을 거쳐 종북이란 언어까지 발전한 이 틀은, 그걸 적극 차용하든 아니면 색깔론이라 부르며 비판하든 북한 보도를 할 때 모든 언론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주요하고 강력한 틀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 반대편에 놓여 있던 게 다름 아닌 ‘통일’이란 틀이었다. 통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는 명분, 그 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명분을 부여해 왔다. 하지만 분단이 너무 오래 지속되자 ‘통일’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고, 이산가족들에게나 해당되는 낡고 협소한 틀이 되고 말았다.

전쟁의 위협까지 갔던 작년

특히 두 번의 보수 정권 동안 ‘통일’의 틀에 부합하는 남북 교류나 협력은 축소되어진 반면, 통합진보당 해산이나 간첩 조작 사건처럼 이념의 틀을 강화시키는 일들이 잦아졌다. 언론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흐름을 따라갔고 특히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이념의 틀을 강화하는 보도들을 엄청나게 쏟아내며 대북 보도를 주도했다.

강대강으로 치달으며 전쟁의 위협까지 갔던 작년 북한의 핵 도발 상황은 이러한 시각의 절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 어리고 충동적인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그 못지않게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의 캐릭터는 당장 내일 전쟁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언론을 달구었다. 이념의 틀이 ‘전쟁’이란 틀까지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점이 ‘이념’의 틀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전쟁 위협이 코앞에 이르러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상황이 되자 이념 따위(?)는 사치스러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절정으로 치닫던 ‘이념’의 틀은 순식간에 (생존을 위한) ‘평화’라는 틀로 대체되어 버리게 된다.

정부는 이 점을 재빠르게 포착했다. 혹은 정책적으로 이미 준비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슬로건 역시 통일이 아닌 평화로 설정되었다. ‘평화, 새로운 시작’이 그것인데, 하나의 통일 국가를 남북 문제의 해결책으로 내세웠던 과거에 비하면 대단히 소극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불안은 이러한 목표 후퇴를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언론이 예측하지 못한 ‘평화’

반면 언론은 이러한 급격한 틀 전환을 예측하지 못했다. 북한 김정은의 정치적 행보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위협의 증가와 평화의 필요성 증대는 이미 1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런데도 이념의 틀을 굳이 고집했던 건 언론 자신이었다.

최근 들어서야 언론에 소개되는 북한 관련 보도 중 하나가 지난 10년간 급격하게 늘어난 북한의 장마당 수이다. 이는 북한이 이미 시장경제 체제로 상당히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식 혹은 과거 남한의 개발 독재형태로의 변화를 북한이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선전이 필요

이처럼 중요한 정보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했던 건 아마도 언론이 고수하는 이념의 틀에 그러한 팩트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틀에 맞지 않는 팩트를 튕겨낸 대가를 언론 스스로가 치르고 있는 셈이다. 언론 비평의 유효성은 최소한의 언론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팩트와 프레임이라는 기본자세를 빨리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바로 볼 수 있는 정보가 시급하다. 공영방송들의 선전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Posted in 2018년 5.6월호, 특집_정상회담과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