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북한보도] 시대에 떳떳한 북한 보도를 향해

방송기자42호_남북정상회담_트럼프김정일

시대에 떳떳한 북한 보도를 향해

KBS 김정환 부장(북한부)

 

클롭, 골룸, 트럼프

1. 지난해 이맘 때, 또는 8월 유럽의 축구 리그들이 2017/18 시즌을 시작할 때 EPL 소속의 리버풀이 UCLUEFA Champions League 결승전에 올라갈 것이라고 떠들었다면, 아마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심지어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을 ‘몹시’ 좋아해서 리버풀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가 시즌을 시작할 때 나는 UCL 결승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리버풀은 클롭의 놀라운 지도력-여기엔 살라의 능력을 120% 끌어올린 그의 전술도 포함됩니다-을 바탕으로 펩의 맨시티를 포함한 강팀들을 격파해 나갔고-이번 시즌 리버풀의 도깨비 같은 불안한 수비를 감안하면 놀랍기만 합니다- 오는 27일, 챔스 3연패를 노리는 강팀 레알 마드리드와 우승컵을 놓고 마지막 격전을 치릅니다.

같은 질문을 던져볼까요? 작년 이맘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무렵에, 그리고 여름과 가을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관계 개선을 이루고 ‘비핵화’에도 합의할 거라고, 더 나아가 “늙다리”니 “꼬마 로켓맨”이니, 내 핵단추가 더 크니 하며 동네 양아치들처럼 굴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할 것이라고 TV 뉴스에서 떠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물론 면피용으로,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하는 식으로 말한 기자도 일부 있었겠지만, 그런 전망을 기자 본인도 믿지는 않았을 겁니다.

잇따른 예상 밖 결과들

2. 판타지 영화 시대의 개막을 알린 기념비적 작품이 3부작으로 이뤄진 『반지의 제왕』입니다. 그 가운데 2부 『두 개의 탑』을 보면 지하 동굴에서의 모험이 펼쳐집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지어는 지혜로운 마법사 갠돌프조차도 길을 잃고 가야할 길을 찾아 고민하는 가운데, 프로도는 누군가가 자신 일행을 따라오는 것을 눈치채고 갠돌프에게 얘기합니다. 물론 갠돌프는 이미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혜안을 보여주는 얘기를 해줍니다. “그건 골룸이야…. 골룸이 우리의 여정에서 의외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절대 반지를 용암산에 버릴 수도 있지.”

도널드 트럼프, 백만장자이지만 무자비하고, 여색을 즐기고(술보다는 콜라를 더 좋아한다고 하니, 영웅의 조건을 다 갖추진 못 한 걸까요?), 공감 능력도 별로 없어 보이고, 심지어는 유아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 한 게 아닐까 싶게 유치한 ‘인정 투쟁’에 몰두하고. 이런 트럼프가 지난해 1월 20일, 미국의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물론 일부에선 그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햄버거 회담을 제안하는 등 나름 대화의 제스처를 취한 점 등을 근거로 북·미 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긴 했지만-사실 이런 기대는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됐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 씨는 장사꾼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에서 돈이 된다 싶으면 잘 할 거다, 이런 주장이었는데 이명박 씨가 대통령 되고 남북 관계가 어떻게 됐는지는 다 아시는 거고- 이후의 ‘코피 전략’ 논란에서 드러나듯 전쟁 불사론 혹은 불가피론이 미국에선 대세가 됐지요. 그러던 트럼프가 돌연(!) 김정은 위원장과 5월 안에(“by May”)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3.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은, ‘한국 기자들은, TV와 신문은, 언론은, 남북 관계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 이달일지 다음달일지 하여간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선 또 어떤 재주를 보일까 하는 겁니다.

공적인 지면에 개인 사정을 얘기하려니 좀 죄송합니다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저에게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2007년엔 KBS 보도국에서 북한 ‘예비전문기자’로 통일부를 취재하고 있었고, 특히 그해 10월의 남북정상회담 때는 사흘간의 특보에 출연하는 등 나름의 보람, 뿌듯함 속에 열일 했습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듯,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된 이후 남북 관계는 얼어붙었고 퇴행했습니다. KBS는 ‘당연히’ 그 직접적인 악영향을 받았고 저는 북한 ‘전문기자’가 되기는커녕 정치외교부에서 쫓겨났습니다. 11년, 황무지나 다름없던 그 시기, KBS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인 북측을 향해, 그 시기의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통신이 남측을 향해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그들보다 더 심하게, 호전적이고 공격적이고 민족 분열적인 언사와 주장을 쏟아냈습니다. 물론 KBS의 경우 이명박근혜 정권의 전리품이 됐고 권력의 단물을 빨아먹겠다며 공범자를 자처한 이들이 사장 자리에, 보도본부장 자리에, 보도국장 자리에, 정치외교부장 자리에 앉아 더욱 황폐해진 탓도 큽니다만, 대부분의 다른 방송사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코 떳떳할 수만은 없다면, 지나친 주장일까요?

이제 떳떳한 언론 될 수 있을까

4. 절대 반지는 뜻밖에도 골룸의 손에 의해 용암산의 용암 구덩이에 빠졌고 녹아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원래 절대 반지를 용암산으로 운반해 없애겠다는 임무를 자청했던 프로도 곁에는 지혜로운 백색 마법사 갠돌프, 엉뚱하기도 하지만 서로를 믿고 아끼는 친구들인 샘과 피핀, 메리, 운명을 만들어 나가는 왕위 계승자 아라곤, 활의 명수인 엘프 레골라스, 용감한 전사 김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은 절대 반지를 없애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30년 가까이 끌어온 북한과 미국의 핵문제도, 생각지도 않았던 인물인 트럼프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트럼프가 핵 문제 해결의 핵심 인물이 되겠지만, 그런 국면을 만드는 데 한국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속한 방송사는, 내가 만드는 한국 언론은,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를 이끄는 이가 되렵니까! 아니면 반시대적이며 시대를 거스르는 자로 남으렵니까?

5. 오는 27일, UCL 결승전에서 리버풀이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 좋겠습니다. 클롭 감독과 그의 팀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2006/07 시즌 이후 11년 만에 결승에 올라왔다는 게 또 제 마음을 끕니다. 마치 2007년 10월 이후 11년 만에 열린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클롭과 그의 팀 리버풀이 11년 만의 우승이라는 성공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덧. 11년 만에 돌아온 방송 현장에선 모 방송사의 영향력을 느꼈습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이후 회담의 주무 부서인 통일부 장관의 9시 뉴스 출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독점욕을 강하게 느끼고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자사 이외 타사에도 출연한다고 하자 취소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건강한 경쟁을 기대했는데 한 방 맞은 느낌이더군요. 하여간 돌아온 KBS 기자들과 뉴스, 잘 지켜봐주시길 부탁합니다. dh

 

Posted in 2018년 5.6월호, 특집_정상회담과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