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정상회담 현장] 격랑의 하루, 2018년 4월 27일

방송기자42호_남북정상회담

격랑의 하루, 2018년 4월 27일

MBC 임명현 기자 (정치부/본지 편집위원)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현실

수없이 머릿속에서 그려본 장면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그려지지 않던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화면 속이긴 하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실도 있을까.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취재했던 선배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별 느낌이 없을 줄 알았다. 이제 34세, ‘핵수저’일 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가 북한 최고지도자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감성적으로 그가 주는 느낌은 남다를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렇지 않았다. 울컥함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2,000명 이상의 기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2018년 4월 27일, 오전 9시 30분이었다.

판문각 계단에 나타난 북한 최고지도자

나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했다. 청와대 춘추관에서 몇 차례 생중계 보도를 소화했다. 그리고 오전 8시, 문재인 대통령이 출발했다. 나도 킨텍스 프레스센터로 출발해야 했다. 출근시간임을 감안하면 청와대에서 고양 킨텍스까지 제시간 안에 당도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남북 정상의 대면 장면을 아무도 없는 춘추관 기자실의 TV로 보고 싶진 않았다. 일단 출발했다. 교통통제의 여파인지 시내 도로는 혼잡했지만, 다행히 강변북로에 진입한 이후에는 수월했다.

킨텍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시계를 보니 9시 21분이었다. 아직 시간이 있었다. 메인 프레스센터에 들어가며 대형 스크린을 보니 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숨죽이던 기자들 사이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판문각 계단이었다.

개인적으로 김 위원장이 판문각 계단을 걸어 내려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예고대로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올 거라고 해도,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건물인 T2와 T3 사이 바로 그 앞까지 차량을 타고 올 수 있다. 차량을 타고 온 뒤 몇 발자국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판문각 계단을 걸어 내려온다면 보다 극적일 거라 생각했다. 결코 짧지 않은 판문각 계단을, 맨몸 상태로 걸어 내려와야 하는 것인데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의 입장에선 그것이 나름의 결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 순간 이번 회담은 실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핵화’ 직접 언급은 아끼는데…

또 다른 나의 관심은, 아마도 대부분 그랬겠지만, 김 위원장이 어떤 방식으로 ‘핵’ 문제를 언급할 것인가였다. 공동선언문에 ‘비핵화’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봤다. 관심은 그가 생중계에 노출된 상태에서 비핵화의 의지를 직접 언급하거나, 최소한 시사하는 발언을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입을 연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에 있어서는 예상보다 강한 어조로 말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그날까지의 시간을 ‘잃어버린 11년’으로 표현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분단 이후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 최고지도자가 그에 대한 소회를 비교적 진솔하게 밝힌 것 또한 귀에 들어왔다. 평양냉면에 대해 언급하다가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라고 밝힌 부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비핵화 의지를 시사한다고 느낄 만한 발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전 회담을 마칠 때, 예고에 없던 생중계를 하겠다고 해서 이때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해 밝힐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는데 그때도 관련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합의한 것이 남북은 물론 전세계에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발언 정도가 최대치였다. 전세계인이 기대하는 선물로 ‘비핵화’ 이상의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동시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생중계 상태에서 비핵화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생각보다 그와 북한에 있어 훨씬 부담이 큰 문제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판문점 선언’이 준 양가적 감정

세기의 이목을 집중시킨 식수행사와 도보다리 산책, 특히 ‘보이지만 들리지 않는(Visible but inaudible)’1) 단독회담이 전해준 여운은 내게도 역시 컸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는 나에게 주어진 임무에 집중해야 했다. 공동선언문이 나오면 그 가운데 비핵화와 관련된 부분을 분석해 리포트로 정리해야 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오후 5시 15분쯤, 엠바고로 기자들에게 <판문점 선언>이 배포됐다.

핵, 핵, 핵부터 찾았다. 이미 정상회담 전부터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는 비핵화 문제’라는 표현이 들어간 리포트를 수십 번 했다. 당연히 핵문제에 대한 남북의 합의사항이 도입부에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핵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스크롤을 해보니 마지막에 가서야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표현이라 생각한 ‘완전한 비핵화’. 있다. 들어갔다. 그런데…, 맨 마지막 항목이다. 구체성 있는 이행방안도 눈에 띄는 게 없다. 순간 약간 김이 샜다.
공동발표를 위해 남북 정상이 같이 나왔다. 먼저 입을 연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합의사항 가운데 비핵화 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선언문에는 맨 뒤에 있던 합의사항이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가장 먼저 언급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김정은 위원장이 결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발표에 나선 김 위원장은 비핵화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남북관계 발전과 전쟁 불용 의지에 대해 진정성을 담으려 하는 모습이었다.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리는 순간이었다. 5년 넘게 핵-경제 병진노선을 외쳐온 김정은 위원장이 어느 날 갑자기 비핵화를 밝히는 것에 대해 부담이 클 수 있다는 점, 그렇게 보면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해 3차례의 비핵화 표기를 선언문에 명기한 것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이 명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통 합의사항 가운데 비핵화에 대한 의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설명하고, 남북관계 개선과 전쟁 종식에 대한 의지는 북한 지도자가 설명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한 게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

유예된 박수를 머지않아 듣게 되길

그렇게 볼 때 비핵화 문제는 남북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의 대원칙에 대해 확고하게 합의하되, 구체적인 로드맵 등 최종 해결방안은 북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점. 나아가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방안이 타결되면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 및 남북교류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을 분명히 예고했다는 것이 이번 판문점 선언의 본질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의미가 있는 합의이고 또 이를 공동발표한 남·북 정상의 형식 역시 파격적이었지만, 남북 정상의 서명 그리고 서명 이후의 악수 및 포옹을 지켜보던 메인프레스센터의 기자들 사이에선 오전과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진 않았다. 마감 때문에 오전보다는 여유가 덜한 상황이기도 했겠지만, 순간적으로 나와 같은 복잡함을 느낀 기자들이 오전보다는 더 많았기 때문 아닐까.

김대중 대통령의 회고록 중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대목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 헤어지면서 반드시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와의 만남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훨씬 높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만남’ 자체가 주는 박수 소리는 이번보다 작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번 판문점 선언을 이행해나가고, 결국 한반도 비핵화 여정의 종착점에 다가갈 때 그들을 향한 박수소리는 2018년 4월 27일 오전 9시 30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Posted in 2018년 5.6월호, 특집_정상회담과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