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회 경제보도부문_론스타, 5조원 소송의 진실 연속보도_MBC 양윤경 기자

2월 초,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다. “론스타 관련 계약서 같은 걸 입수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 이름도 나온다. 일단 한 번 보고 취재 가능한지 판단해보라.” 며칠 뒤 120여 장의 문건 실물을 들고 찾아온 이 취재원을 나는 그 후 한 달 반 동안 몹시 원망하게 된다.

 

‘취재 과정에서 부딪힌 난관’을 이 후기에 쓰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난관이 거창하면 폼이 좀 날 텐데 지질하게도, 취재원이 던져준 문건 120여 장이 모두 영어로 되어 있었다는 게 내 첫 번째 난관이었다. 진심이다. 경제용어가 촘촘히 마블링 된 영어 소장을 몇날 며칠에 걸쳐 읽는 작업은 토종 한국 기자를 최고난이도의 시험에 들게 했다. 파일도 없이 하드카피뿐이어서 인공지능시대에 구글 번역기조차 돌릴 수 없었다.

 

문건은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건 중재재판의 소장과 증거서류들이었다. 한국 정부가 방해하는 바람에 외환은행을 팔 타이밍을 놓쳐 2조 원쯤 더 벌 수 있는 걸 4조 7천억 원밖에 못 벌었다는 게 소장의 요지였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우리 곧 소송 걸 테니 그 전에 (돈을 줄) 방법을 고민해 보라”는 내용증명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에 낸 세금도 억울하다는 주장으로, 추후 밝혀진 요구액은 약 5조 원이었다. 말이 5조 원이지 어마어마한 액수다. 한 달 최저임금을 160만 원으로 잡았을 때 26만여 명에게 1년 동안 월급을 줄 수 있는 돈이다. 간헐적으로 기사화되었지만 주변의 기자들도 소송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승패를 떠나, 국민의 세금을 놓고 미국의 투기자본과 우리 정부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부터 시청자들께 알려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다음 난관은 국장과 부장의 반대였다(역시 변변치 못한 난관이다). 론스타 이슈를 과소평가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방송용 기사로 만들기엔 지나치게 어렵고 영상 소스도 턱없이 모자라다는, 이해할 만한 우려였다.

 

하지만 선배들이 망설이니 더 오기가 생겼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헐값에 산 정도가 아니었다. 공부를 할수록, 애초에 은행을 인수할 자격도 없는 투기자본이 한국을 기망해 벌인 불법 행위라는 확신이 들었다. 론스타에겐 외환은행이 여러 사업 중 하나였겠지만 우리나라와 노동자들에겐 중요 금융기관이요 평생직장이었다. 금융관료들의 도움으로 한국에선 쉽게 허들을 넘어놓고, 똑같이 은행업을 하지 못하게 하는 미국에선 투철한 준법정신으로 외환은행 미주 지점들을 모두 폐쇄해 버렸다. 이걸 우리 금융당국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러고는 ‘론스타=무자격자’라는 판단을 미루다 소송까지 걸렸다. 보도 잘 할 수 있다고 언성을 높여가며 밀어붙여 선배들의 동의를 얻었다.

 

선배들의 우려는 기사 작성과정에서 현실이 됐다. 15년 동안 론스타가 써내려간 대하드라마를 단독 입수한 소장을 통해 보여주는 건 예상을 뛰어넘는 난관이었다. 방송 바로 전날 새벽까지 기사가 몇 번씩 뒤집어졌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했잖아”라는 무언의 비난이 들리는 듯했다.

 

돌파구는 금융관료들에게서 찾았다. 론스타가 들고 나는 데 관여한 금융관료들은 론스타 의혹으로 나라가 몇 번씩 들썩거렸음에도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기사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15년째 우리 정부가 허우적대고 있는 론스타의 늪, 거기에 일조한 금융관료들을 찾아가 소회라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찾아가 마이크를 갖다 댔고, 무책임하거나 신경질적인 그들의 반응이 이번 보도를 방송에 최적화된 기사로 만들어줬다.

 

한 금융관료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요. 론스타는 투기 자본이잖아요. 투기 자본이 투기 자본답게 행동을 한 거 아니겠어요?”

 

이제 와 뭘 어쩌겠나. 뭘 바꿀 수 있겠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질문에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 팀 <스트레이트>가 내건 목표였다. 법적 공소시효는 끝났더라도 시비를 끝까지 짚어내자는 것. 그래서 책임자들이 망각 속에서 면죄부를 찾게 하지 말자는 것.

 

기자 나부랭이가 가진 게 있다면, 시청자와 함께 시효 없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바로 그 권리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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