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회 뉴스부문_공익제보자 파면하려던 비리사학, ‘되치기’ 몰락_KBS 김덕훈 기자

“KBS에는 제보하고 싶지 않아요.”

 

정 모 씨를 처음 알게 된 건 2017년 8월 17일이었다. 서울미술고 현직 교사인 정 씨가 학교 비리를 교육청에 제보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였다. 그런 첫 통화에서 정 씨는 대뜸 “당신네들에게는 공익제보하기 싫다”고 말했다.

 

충격이었다. ‘취재원이 어떻게 기자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는 서운함은 아니었다. 너무 망가져버린 회사 처지를 직접 확인해 버린 탓이다. 사실 지난 9년 간 우리 언론사는 약자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해왔다. 정 씨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날 소위 ‘물을 먹었’다. 서울미술고 비리는 결국 다른 언론사의 보도로 세상에 드러났다. 열흘 뒤, 서울시교육청은 횡령·내부거래 등 정 씨가 제보한 내용 대부분을 인정해 학교 설립자인 교장을 파면하는 등 감사 처분을 내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 씨는 첫 통화에서 내게 모질게 대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고 한다. 타사 단독 보도 직후, 정 씨가 부탁한 대로 공익제보자 주장을 충실히 반영한 단신을 출고했다. 그렇게 ‘제보하기 싫은 기자’ 처지를 간신히 면했다.

 

그 뒤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았다. 올 2월의 어느 날, 정 씨 근황을 물으려 전화를 했다. “잘 지내시나요?”라는 질문에 정 씨가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정 씨에게 “괜찮으실 때 통화하자”며 결국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정 씨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파면됐다고 했다. 공익제보자의 삶이 순탄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파면 처분을 받은 교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정 씨가 도리어 학교를 떠나게 됐다는 사실은 부당했다.

 

학교가 정 씨를 파면한 근거는 학생 상습 성추행이었다. 여러 사실 관계를 비춰봤을 때 정 씨 성추행 의혹은 근거가 빈약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첫 보도(사학비리 적발됐지만…설립자 ‘건재’, 제보 교사는 ‘파면’, 18/03/02)가 나갔다.

 

보도 이후인 3월 14일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정 씨에 대한 파면 조치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학교는 곧장 정 씨 복직을 막기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학교 측은 성추행 교사를 교단에 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미술고가 성추행 문제를 평소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교사 성추행을 학교가 적극적으로 무마한 문건 하나를 입수했다. 2014년 서울미술고 성폭력심의위원회가 계약직 교사인 여 모 씨 성추행 사건을 논의한 회의록이었다.

 

심의위는 여 씨의 상습 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약 기간이 곧 끝난다는 이유로 징계하지 않았다. 계약 만료 뒤 여 씨는 학교 법인에 취직했다. 올 학기에는 급기야 교사로 교단에 복귀했다. 똑같은 상습 추행 의혹을 받는데도 학교는 여 씨를 보호하고 정 씨는 내쫓았다.

 

여 교사는 설립자 일가에 맞서던 비판 교사 해직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사였다. 철저하게 학교 측 이익을 대변하는 ‘홍위병’이었다는 게 동료 교사들 증언이다. 학교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여 씨 계약을 보장해줬다는 의혹을 사기 충분했다.

 

두 번째 보도(돌아온 ‘성추행 논란’ 교사…경위 조사 착수, 18/03/23)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서울미술고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설립자 김 모 씨는 결국 교장을 그만뒀고, 남편인 이 모 씨도 이사직을 박탈당했다.

 

이달 초 교육부는 그간 서울미술고가 누려왔던 특혜인 ‘자율학교’ 지위를 취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자율학교 지위를 잃게 될 경우 서울미술고는 입학금 폭리를 더 이상 취할 수 없게 된다. 공익제보를 한 정 교사에 대한 복수는 결국 학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자충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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