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 북 고위급 방남 취재기_‘강철비’ 그치고, 무지개 뜰까?_KBS 김영인 기자

한반도 지도 위에 무지개 띄운 北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전날인 2월 8일 오후 8시, 강릉 아트센터에 삼지연관현악단의 연주와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첫 곡은 예상했듯 <반갑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시선을 끈 건 따로 있었다.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 ‘무지개 떠오른 한반도’였다. 북한은 정치적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공연을 활용한다. 이 때문에 연주와 노래보다 스크린에 흐르는 영상 메시지를 더 주목해야 할 때도 있다. ‘북한이 작정하고 내려왔구나’, ‘그렇다면 당장은 ‘강철비’의 위협도 해소될 수 있겠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다음 날 오후 1시 47분, 北 참매 2호기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물론 스포트라이트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에게 집중됐다. 역사상 첫 방남인 김 씨 일가 직계가 빈손으로 오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때도 정치적 복선을 깔았다. 김여정이 타고 온 전용기 편명이 ‘PRK-615’였는데, PRK는 북한 영문 공식 약자, 615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6·15 공동선언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됐다. 바로 다음 날,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며 사실상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다.

‘조마조마’에서 ‘주렁주렁’까지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취재 담당으로 파견이 결정됐을 때 들었던 첫 감정은 ‘조마조마’였다. 예술단과 응원단이 돌발적으로 체제 선전을 할 수도 있고 특히 대회 중반인 2월 16일이 북한 최대의 명절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기우였다. 북한 예술단은 남측 가요를 여럿 부르고 체제 선전곡은 빼는 등 최대한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예술단을 태우고 온 만경봉 92호도 우리 정부에 유류 지원을 요청하다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일자 “폐 끼치지 않겠다”라며 그냥 돌아갔다. 응원단은 가면 응원이 ‘김일성 가면’ 논란을 낳자 다음 날부터 가면을 꺼내지 않았다. 김정일 생일 때도 특별한 경축 행사 없이 넘어갔다.

물과 비료를 주지 않아 앙상했던 ‘남북대화 나무’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주렁주렁 열매가 달려갔다. 북 고위급 대표단은 2월 10일과 11일 이틀 동안에만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비서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조명균 통일부장관 등 정부 핵심 관계자들과 각각 밥을 먹으며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김여정은 임종석 실장이 마련한 만찬에서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리라고 생각 못했고 생소하고 많이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비슷하고 같은 것도 많더라. 하나 되는 그날을 앞당겨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 다시 만나길 바란다.”라는 건배사를 남겼다.

폐막식 때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내려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비핵화 방법론’을 경청하고, “조건 없이 북·미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숨가쁘게 진척된 평창·강릉발 화해 무드, 불과 몇 달 전 자는 아이들을 보며 ‘전쟁이 나면 이 아이들 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걱정하곤 했는데, 악몽을 꾸다 깬 기분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2월 12일 김여정에 방남 결과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화해와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켜 훌륭한 결과들을 계속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고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실무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다양한 남북교류와 접촉을 예고한 것이다.

동상이몽 속 불안한 평화 여정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2월 26일 이른 아침. 나의 마지막 취재는 북한 응원단의 귀환 표정을 담는 것이었다. 강원도 인제의 숙소를 나서는 응원단원들은 체류 기간 내내 강조했던 ‘우리는 하나다’, ‘우리 민족끼리’, ‘다시 만납시다’를 되풀이했다.

오영철 응원단장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댔다. 오 단장은 “빨리 조국통일이 돼야 한다는 거, 정말 우리 겨레끼리 지내보면 한 강토에서 한 핏줄을 잊고 사는데 이렇게 갈라져 산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모르겠다고. 빨리 조국통일의 성전에 다 같이 나섭시다”라고 말했다. 당위적인 얘기에 고개를 계속 끄덕이다 마지막에 걸린 오 단장 의 한 마디…“조국통일의 성전에 다 같이 나섭시다” 그 가 말한 ‘성전’의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조언을 구한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평화 공세를 이렇게 분석했다.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 평화군축 회담으로 가겠다는 건데, 물론 미국이 받지 않죠. 그래서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확대로 우회적인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거죠.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게 되면, 결국 국제적인 제재와 압박 전선의 이완이 발생할 것이라는 계산에 기초하고 있죠.”

문재인 대통령과 이방카 미 백악관 보좌관의 2월 23일 만찬 대화도 동상이몽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 (남북 간 대화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께서 남북대화를 강력하게 지지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방카 보좌관 : 오늘 만찬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최대한의 압박을 위한 한미 공동의 의지를 확인하는 자리라 생각합니다.

평창과 인제, 강릉을 오가며 북한 참가단의 말과 행동, 우리 당국자들과 미국의 동향을 하나하나 좇아간 20여 일간의 시간. 화해 분위기에 흥분하고 감동했으나, 풀기 어려운 ‘한반도 고차 방정식’에 또 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1948년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자주 끊기고 결국엔 대결을 불렀더라도 ‘대화’는 우리에게 숙명이라는 김연철 교수의 말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우리는 지금 ‘70년의 대화’를 이어갈 또 다른 긴 여정 앞에 서 있다.

“대화의 길에는 언제나 장애물이 많다.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올 것이다. ‘70년의 대화’는 말한다. 북한의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고, 남북관계가 움직이길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김연철.(2018).『70년의 대화』

Posted in 2018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