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_ 평창 동계올림픽 취재기_ 가슴속에 남은, 그러나 더 담지 못한 평창_MBC 전훈칠 기자

스포츠기자에게 올림픽은 피할 수 없는 부담이자 설렘이다. 주요 방송사 간의 시청률 경쟁은 묵은 피로마저 뒷전으로 밀어낼 만큼 극심하지만 땀이 채 식지 않은 선수를 코앞에 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심장 박동을 자극한다.

평창올림픽 준비는 접근 방법부터 쉽지 않았다. 그동안 쌓은 올림픽 보도 노하우는 시차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생각보다는 큰 변수였다. 북한의 등장으로 외교적 사안이 엮인다는 점도 경험한 적 없는 요소였다. 올림픽 준비에 한창이어야 할 때 파업 중이었다는 문제도 변명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실재했다.

뚜렷한 해답 없이 성적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해묵은 의무감만 안고 평창으로 향했는데 막상 현장을 경험 하기 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고민을 해야 했다. 그 고민은 달라진 시민 의식과 선수들의 진정성을 기존 미디어에서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

시청률 경쟁 속에 담지 못한 진심

관중이 이른바 ‘메달 종목’에 집중된 건 사실이지만 언론이 관심을 두지 않은 경기장 또한 열기는 뜨거웠다. 얼음 트랙에서 질주하는 선수를 뒤쫓듯 움직이는 함성은 귀는 물론 눈으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관중 없는 경기장이 일상이던 대다수 동계 스포츠 선수들에게 진심이 담긴 응원은 그들의 가슴을 흔들만한 것이었다.

이례적인 홈 관중의 응원에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처럼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종목에서는 선수 스스로 기록 단축을 인정할 정도였다. 이승훈은 10,000m를 도는 동안 마지막으로 갈수록 힘이 붙어 만 서른 나이에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1,500m에 출전한 김민석은 후반 700m에서 다리가 굳는 것을 느꼈지만 응원 덕에 버텼다고 고백했다. 많은 선수가 다양한 방식으로 응원의 구체적인 힘을 표현했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수비수 오현호는 마지막 경기 후 응원의 감동을 잊지 못해 부러진 앞니를 드러낸 채 펑펑 울었다. 미디어를 굳이 거치지 않고도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수와 관중은 승부 자체의 극적인 순간뿐 아니라 그 여정까지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4위를 하고도 금메달 의 주인공 최민정을 다독인 쇼트트랙의 김아랑. 이상화 를 끌어안은 일본의 고다이라. 이른바 ‘왕따 주행’ 사건이 벌어졌던 여자 팀추월 경기. 그리고 평창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여자 컬링 대표팀. 화제가 된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관중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적어도 평창올림픽에서 언론은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기보다 시민들의 반응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편이었다.

즐길 준비된 선수와 관중

대회 개막 이전부터 집중 취재를 받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도 예상과는 달랐다. 애국가 대신 아리랑이 나오는 순간 많은 관중이 뭉클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단일팀을 이미 정치적 산물로 규정지은 상당수 언론과 달리 아이스하키 팬들은 우여곡절이 담긴 사연조차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나를 비롯한 취재진과 미디어는 여전히 메달에 집착하는 사고방식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시청률의 덫도 피하기 어려웠다. 같은 경기가 방송 3사에 동시 중계되는 일이 반복됐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팀 구성부터 올림픽 선발 과정까지 영화 같은 이야기를 펼쳐왔지만 정작 백지선 감독은 경기 후 취재진에게 먼저 질문부터 던져야 했다. “혹시 오늘은 TV 중계가 됐나요?”

반성할 부분이 있다면 기회로 삼을 필요도 있다. ‘올림픽’, ‘스포츠’, ‘금메달’. 그동안 큰 고민 없이 쓰고 말해온 평범한 단어들을 다룰 때 이제 한 번이라도 더 마음으로 고민하면 된다. 여론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면 접근 방법도 굳이 근엄해야 할 이유가 없다. 때론 거창한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털어내고 선수와 관중이 진심으로 공감하는 장면을 여과 없이 포착하는 게 스포츠 언론의 본연에 더 가깝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의무감보다 진정성 있는 공감을

간혹 부질없는 회의가 드는 경우도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쿠베르텡에 의해 만들어진 협소한 민족주의의 산물, 그것도 유럽 몇 나라가 주도한 인위적인 대회에 왜 우리가 열광해야 할까. 맥도날드와 코카콜라가 공식 스폰서로 당당히 자리 잡고 비자카드가 아니면 생수 한 병 결제할 수 없는 그들의 잔치. 이미 상업화가 논란이 아닌 현실이 된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성 있는 스포츠의 의미를 담아내야 할까. 이 문제 역시 올림픽이 어떤 이의 인생을 좌우하고 또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자체에 더 집중하면 된다고 결론내렸다. 고교 시절 ‘덩크슛되 는 애’로 통하던 윤성빈이 국가대표가 되고 금메달을 딴 비현실적인 스토리. 치명적인 부상의 악몽을 딛고 4회전 점프로 우승한 숀 화이트의 묘기.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 소재인 여자 컬링 팀과 마늘의 연관관계에 몰입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선수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올림픽과 같은 종합 대회가 끝나면 이유 모를 허탈함이 찾아오곤 한다. 부족하나마 직업인으로는 물론 순수한 팬의 입장에서도 몰입하려 애쓴 흔적이라 여긴다. 실격당한 경기도 ‘꿀잼’이라던 쇼트트랙의 최민정. 링크에서 오열한 남자 아이스하키의 백지선 감독. 대회가 끝나고 이산가족이 된 단일팀 선수들 의 눈물 속 이별 장면. 누구도 가공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슴속에 남긴 채 다음 올림픽을 기다린다. 덜 반성하는 일상을 준비하면서.

Posted in 2018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