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MeToo, 남의 일일까?④_뉴스는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가?_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김세은 교수

남성의 과잉재현과 여성의 상징적 소멸

뉴스에서 여성은 한 마디로 “잘 보이지 않는다.” 뉴스의 취재 대상이든 취재원이든 기자든, 뉴스에서 여성은 드물게 등장하며 주류인 남성의 주변에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세계 공통의 현상을 터크먼G. Tuchman은 ‘상징적 소멸(symbolic annihilation)’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했다. 상징적 소멸은 극단적인 과소 재현에서 생겨나는 것으로서, 미디어에서 여성이 제대로 묘사 되지 않음, 즉 존재감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적 소멸은 여성뿐 아니라 동성애자나 인 종, 계급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상징적 소멸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재현의 결여가 이른바 존재감의 결여, 영향력의 결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남성적 뉴스가치의 지배

그렇다면 왜 여성을 뉴스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뉴스가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뉴스 생산과 제작이 조직의 문화와 조건에 맞춰진 관행에 따라 관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상기하면, 기자들이 취사선택하는 뉴스가 그들의 인식과 관행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관련된 뉴스가치는

주로 저명성이나 인간적 흥미가 여성과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지게 선택되는 경향이 있다. 즉, 여성 연예인에 대한 자극적 뉴스가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여성 중에는 정치인도 있고 전문직 여성도 많은데 왜 이런 식의 뉴스만 ‘난무’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복합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전통적으로 (그리고 지금도 별다르지 않게) 뉴스 생산이 남성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뉴스가치가 남성의 입장과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 정치나 경제 등 이른바 공公의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나 활동이 지극히 제한·통제되어 왔다는 점, 그리고 뉴스를 소비하는 수용자가 여성보다는 남성이라는 점 등이 여성을 고정된 이미지로 재현하는 뉴스를 양산하는 배경이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언론사는 날로 상업화되어간다. 품이 많이 드는 고품질의 뉴스로 승부하기보다 손쉽게 수용자의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시켜주는 선정적인 뉴스가 선호된다. 여성의 성性을 소재로 한 뉴스는 (남성) 수용자의 흥미를 끌기에 더없이 좋은, 다시 말해 뉴스가치가 높은 상품일 수밖에 없다. 영상 미디어 시대, 여성의 성 상품화는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강화되고 촉진되고 있다.

뉴스가 일반 여성을 다루는 방식: 비난·주변화하기

뉴스에서 연예인이나 유명 스포츠 선수, 사회적 성공을 거둔 화제의 주인공이 아닌 ‘보통’ 여성을 칭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일반 여성이 뉴스에 등장하는 경우는 칭찬의 대상이 되기보다 비난(condemnation)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범죄 관련 뉴스에서 흔히 나타나는 방식인데,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에도 뉴스는 여성을 비난한다. 특히 성 관련 범죄인 경우 뉴스는 여성에게 원인이 있다거나 아예 여성의 잘못으로 돌리는 식의 질책과 책망을 담아낸다. 또 피해자인 여성을 부각시켜 사건의 본질과 초점을 흐리는 식의 보도도 자주 볼 수 있다. 2008년 ‘조두순 사건’이 가해자의 이름을 지운 채 ‘나영이 사건’으로 명명되었던 것 역시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여성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더욱 극단적인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 범죄자의 경우는 그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심을 두고 정신질환이나 환경을 강조함으로써 범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와 함께 희생자로의 치환이 빈번히 이루어지는 반면, 여성 범죄자의 경우는 더욱 비도덕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굴레를 씌워 묘사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주변화하기’ 방식이다. 뉴스에서 일반 여성은 대개 주부나 학생, 회사원 또는 직업을 알 수 없는 사람 등 사소한 주변인물로 등장한다. 이렇게 여성을 업무나 공적인 능력과 분리시켜 중요하지 않은 사적 영역의 사람으로, 나아가 무능력하게 보이게끔 하는 것을 주변화 (marginalization)라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여성을 취재원이나 인터뷰 대상으로 삼는 경우에 주로 사용되는데, 여성은 대부분 무지하거나 감정적이거나 남성의존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들이 뉴스에 등장하는 이유도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이다. 남성 전문가들이 미리 계획한 대로 집무실 등 전문성을 한껏 드러내는 공간에서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반면, 여성은 우연히 맞닥뜨린 카메라 앞에서 휴가지에서의 감흥이라든지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불평 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패턴화되어 있다.

뉴스가 전문직 여성을 다루는 방식: 희소성·여성성 강조하기

그렇다면 전문직 여성에 대한 뉴스는 어떨까? 피스크J. Fiske가 뉴스를 남성적 서사구조로 파악하는 것처럼, 뉴스는 기본적으로 공적 영역에 진출한 여성을 불편해한다. 따라서 매우 특별한 뉴스 가치를 갖고 있는 경우에만 뉴스로 다루는데, 가장 흔한 것이 바로 ‘최초’인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최초로 어떤 자리에 오른 여성은 희소성이 강조됨으로써 그 성취나 성공이 여성 일반으로 확장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즉, 공적 인물로서의 여성을 자연스럽지 않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이 ‘예외적’인 여성과 일반 여성을 자연스럽게 분리하는 동시에 그 자리가 본래 남성의 영역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희소성 강조는 여성 개인의 능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여성의 성취가 개인적이고 일회적인 것으로 여기는 ‘개인화하기(individualization)’와 일맥상통한다.

한편, ‘공주’, ‘여왕’, ‘OO녀’ 등의 라벨label을 붙여 여성임을 강조하는 것은 가장 고전적인 방식 면서 또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젠더 호명’은 역할 이전에 성별을 부각시킴으로써 뭔가 신기하다거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공적 영역에 진출한 여성을 사적 영역으로 끌어내려 여성의 성취가 가진 의미를 희석시킨다. 여성임을 강조하는 것은 뉴스를 보는 남성의 심리적 일체감을 없앰으로써 여성 인물의 영향력 범위를 여성으로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은 역할 수행이나 업무 자질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외모나 옷차림 등 주변적이고 사소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외모나 옷차림을 칭찬하거나 상세히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뉴스는 여성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뉴스에서 여성을 다루고 있지만 여성은 뉴스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또한 여성적 외모와 남성적 업무를 대비 시킴으로써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다르다는 성 고정관념을 은연중 드러내고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

전문직 여성으로 하여금 가족의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 역시 뉴스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가족과의 연결 속에서 뉴스는 그 여성의 제자리가 공적 영역이 아님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불완전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여성의 ‘바깥 일’ 때문에 희생된 가족을 노출시킴으로써, 여성의 성취는 더 이상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전통적인 성 역할은 다시 한 번 확고한 지위를 부여받게 되며, 남성=공적 영역, 여성=사적 영역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1) 이 글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가 펴낸 <다시 보는 미디어와 젠더>(2013, 이화출판) 5장 뉴스와 젠더: 뉴스로 살펴보는 한국 사회 의 여성 소외와 차별(153~189쪽)의 일부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2) 주창윤 (2011). 젠더 호명과 경계 짓기. <한국 사회의 소통 위기>(433~461쪽). 커뮤니케이션북스.

Posted in 2018년 3.4월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집_#MeToo 남의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