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회 지역 뉴스부문_한국원자력연구원 핵 저장고 화재 은폐 사건 최초 및 연속보도_대전MBC 이승섭 기자

<축소와 은폐.. 뒤늦은 자백>

시작은 작은 불씨였습니다. 주말 밤, 한국원자력연구원 핵 저장고에서 불이 났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은 이례적으로 화재 발생 세 시간 만에 화재 정황을 설명한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해당 시설은 2015년 12월 이후 사용하지 않고 있던 ‘폐기물처리시설’로 인명 피해가 없고, 물적 피해는 미미하며, 방사능 누출도 없었다는 부분을 유독 부각시켰습니다.


거짓말, 또 거짓말.. 눈덩이처럼 커진 의혹

처음 의심을 가졌던 건 연구원의 늑장 대응이었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의 발표 내용을 소방당국에 확인한 결과 연구원은 초기 진화에 걸린 시간을 35분 줄였고, 119 출동 시각도 8분 앞당겨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현장 취재 결과 연구원이 ‘폐기물처리시설’이라고 발표했던 화재 현장에는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2백리터 짜리 드럼통 34드럼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불이 난 곳은 핵 폐기물 저장고였습니다.

의혹이 커지자 대전시의원들이 현장 조사에 나섰습니다. 이 때 연구원은 최초 발표 내용을 한 차례 뒤집었습니다. 화재 발생 시각에서 119 최초 신고까지 16분이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뒤늦은 초기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놓친 사실을 시인한 겁니다. 연구원이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구조에 핵 폐기물을 보관해왔다는 사실도 대전MBC 취재로 밝혀지면서 원자력연구원 안전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습니다.


은폐와 축소 반복한 연구원.. 주민 신뢰 바닥

연구원의 거짓말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밤늦게 기자회견을 자청한 원자력연구원은 화재 발생 한 시간 동안 아무런 초동 대응을 하지 못했고, 안전 관리 총책임자가 이 사실을 숨긴 채 허위 보고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화재 발생 닷새 만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핵 폐기물 저장고가 한 시간 동안 불에 타고 있었는데, 아무런 조치도 못한 연구원, 책임을 피하려 이를 은폐한 책임자. 원자력연구원의 안전 시스템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번 사건에 대한 감사를 벌였습니다. 관련자 5명에게 징계를, 2명에게 경고를 각각 통보하고, 원자력연구원에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연구원 안의 모든 방사선 시설을 대상으로 긴급 안전 점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의 은폐와 축소는 이번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무려 6년 동안 이어졌던 방사성 폐기물 무단 폐기 사건이 드러났을 때, 연구원은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일부 직원의 일탈로 몰아갔습니다. 30년 동안 핵 연료를 반입하면서 쉬쉬하고 있었고, 우라늄 시료 상자를 잃어버리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연구원은 사건을 숨기거나 축소하고, 책임을 일부 개인에게 떠넘기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번 사건도 연구원 측은 당시 근무자 사이의 의사 소통 부재를 들며 이번 사건이 직원의 실수라고 강조했습니다. 핵을 다루는 시설 인근에 사는 주민 수만 명은 물론, 150만 대전 시민 모두 원자력연구원에게 신뢰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애초에 핵을 다루는 시설에서 불이 난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허술한 초동 대처에 이를 은폐하고, 사람 탓으로 돌린 연구원. 핵을 다루는 1급 방호시설의 안전 체계가 엉망이라면 주민들은 매일을 불안에 떨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보도는 대전MBC  보도부문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안준철)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지휘 체계의 공백에도 동료와 선후배가 힘을 합쳤기에 가능한 보도였습니다. 함께 힘든 싸움을 지나며 더욱 단단해지고, 새롭게 출발한 대전MBC 보도국 식구들과 큰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원자력연구원의 안전 문제를 포함해 지역 현안에 더욱 촉각을 세우고 지역민의 의견을 제대로 담는 보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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