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2017한국방송기자대상 전문보도부문_친일파 재산 최초 공개 연속보도_SBS 권지윤 기자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친일파와 적폐>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건 관용이 아니고, 무책임이다 관용하는 자가 잘못을 저지른 자보다 더 죄다”. 안타깝게도 안창호 선생의 말은 한국 현대사에서 구문에 그쳤다. 광복 직후, 실기한 친일청산의 후과(後果)는 처참했다. 관용을 빙자한 죄가 누적되면서 독립운동가의 명예는 물론, 친일파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다. 망각은 왜곡의 씨앗이 됐다.

 

  • 친일파 후손의 줄소송…정의의 외피를 입은 부정의

2008년 법원 출입 당시, 친일파 후손의 줄소송을 목도했다. “환수 결정한 친일 재산을 돌려 달라”, “조상에 대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을 취소하라”는 소송들이었다. 지연된 청산으로 친일재산은 이미 정당한 재산으로 둔갑됐고, 분명한 친일 증거도 왜곡된 명분으로 배척당했다. “극단적인 정의는 극단적인 부정의”, “사회 통합, 법적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세력이 많았다. 일부 정치권, 일부 언론, 일부 판사도 때론 교묘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여기에 동참했다.

 

이런 탓에 친일파(후손)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매국을 덧칠해 나갔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부정의가 정의의 외피를 겹겹이 입고, 이를 교정하는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SBS뉴미디어국 제작부 <마부작침>과 <비디오머그>가 친일 재산 추적에 나선 이유다.

 

단발성 기사나 짧은 기획 기사로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보다 실증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기사를 위해 긴 시간 단초를 모았다. 작은 증거라도 아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1,000여장이 넘는 토지대장과 등본을 떼며 추적을 거듭했다. 산을 오르고 전국을 누볐다. 점과 점을 이어 선을 그리듯 취재를 해나갔다. 그 결과 한 번도 드러나지 않은 친일파의 은닉 토지와 실제 재산 규모, 왜곡된 역사의 산물인 단종태실지, 유령처럼 떠도는 적산(敵産), 친일 후손의 재산 증식 과정 등을 추적 보도할 수 있었다.

 

  • 적폐 중에 적폐 ‘친일’..“모든 역사는 현대사”

정부도 밝히지 못한 친일재산을 보도한 건 성과라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고, 마음 한편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어디선가 친일 재산은 계속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수된 이완용의 친일재산은 0.05%에 불과하다는 건 아쉬움의 편린일 뿐. 앞으로도 <비디오머그>와 <마부작침>이 취재를 계속 해나갈 이유다.

 

미완의 친일청산을 두고 한 역사학자는 인터뷰에서 “이 또한 역사”라고 말했다.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면 안 된다는 말로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최근의 적폐청산의 방향성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역사’이기에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자명한 진리가 지금의 적폐청산과 적폐의 원조인 친일 청산의 필요성을 더욱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번 보도는 처음부터 끝가지 같은 양의 땀을 흘리고, 같은 깊이의 고민을 했던 정경윤 박원경 화강윤 주범 이용한 김태훈 기자를 비롯해 김경연 안혜민 정순천 등 동료 저널리스트들의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면벽구년한 취재를 기다려 준 심석태 본부장, 이주형 부장이 없었다면 이번 보도는 불가능했다. 취재 전반에 방향타를 제시한 데스크 진송민 차장은 <친일파 재산보고서> 기사 마지막을 이렇게 손질했다. “어제의 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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