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_욜로YOLO의 일탈을 꿈꾸며…김현철 방송기자연합회장

1996년에 개봉된 영화 ‘Before Sunrise’. 파리로 가는 여자 셀린과 비엔나로 가는 남자 제시의 운명적 만남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단 하루가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임을 보여준 이 영화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유럽 배낭여행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됐다.
특히 제시가 셀린에게 제안했던 말 “저와 함께 비엔나 에서 내리지 않을래요?”는 로맨스의 대명사였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완벽한 욜로 YOLO 라이프다. 운명적 만남이라 느끼는 찰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 이순간’에 몰입하는 로맨스가 욜로스럽기 그지없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 요즘 사람들이 꿈꾸는 ‘욜로의 일탈’을 나는 이해한다. 경기가 호황이었던 시절엔 오늘을 아끼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저금리 저성장의 시대는 다르다. 오늘 뭔가를 아끼고 희생해서 투자하는 행위가 내일의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간혹 욜로라는 표현이, 쓰고 싶은 사람 맘대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때론 일상 탈출의 이유로, 충동구매의 변명으로, 성실할 필요가 없다는 핑계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욜로는 현재의 행복을 위해 도전하고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물질적 가치보다 경험이 중시되고, 진정한 욜로족에겐 위시리스트가 아닌 버킷리스트가 더 중요한 것이다.
새해 들어 원치 않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다보니 ‘욜 로 전도사’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가 한결 살갑게 느껴진다.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 자기 스스로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는 것과 나와 타인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중년의 삶을 오래된 차에 비유한 부분도 가슴에 와 닿는 다. “오래된 차가 편하니까 계속 타고 다니는 것과 같다.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하면 새로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눈앞의 일에 어떻게 대처 해야 할지도 몰라 불안한 삶을 살게 되지. 그러니 인간은 이러저런 불만이 있더라도 지금의 나로 사는 것이 편하고 안심이 되는 거지.”
결국 삶이란 변함으로써 불안을 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일탈 –왠지 나쁜 뉘앙스로 받아들이기 쉬운대 절대 그렇지 않다- 인데, 불행하게도 일탈이 진정 필요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 용기를 꺾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껏 옳다고 믿어왔던 원칙을 스스로 차마 깰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익숙한 것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 하는 것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새해다. 내게도 삶의 균형을 깨뜨려야 할 순간이 찾아온 것 같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말이다. 심리 학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개념이 다양할수 록, 그것도 한 사람의 내면에 서로 모순되는 자기 개념이 한꺼번에 자리 잡고 있을수록 심리적으로 더 건강해진다고 하니 한번 믿고 저질러 보고 싶다

Posted in 2018년 1.2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