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논문 읽기_공영방송 보도의 공정성 저해 요인에 관한 연구: 언론통제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KBS 사례를 중심으로-정필모. 2012.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학위논문_MBC 임명현 기자 (정치부 / 본지 편집위원)

논문과의 만남
2016년 봄, 나는 석사논문 주제를 정교화하기 위해 RISS(한국교육학술정보원) 사이트에서 관련 선행연구를 검색해 모니터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주로 사용했던 검색어는 ‘방송기자’, ‘주체성/정체성’, ‘공정성’, ‘언론통제’, ‘언론파업’ 같은 것들이었다. 그 어떤 검색어를 써도 항상 노출되던 논문이 있었다. 바로 정모 KBS 기자(이하 저자)가 논설위원 시절 쓴 박사학위논문이었다.
처음 이 논문을 접했을 때는 일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2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이론적 논의도 방대하고 연구문제 또한 하나하나 간단한 규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하나의 논문을 써야 했던 입장에서 이 정도 ‘대작’을 접하고 나면 의욕이 꺾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슨 검색어를 사용해도 계속 내 눈앞에 노출되는 이 논문을 보며 한 번은 넘어야 하는 산이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마침 당시 수강하던 수업에서 관심 주제를 다룬 선행연구를 읽고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때 이 논문을 다루겠다고 했다. 그런 강제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나서야 저자의 논문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구는 사례연구와 문헌조사, 심층면접을 통해 불공정 보도의 구조적 원인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정치권력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 KBS 보도를 통제하고 있으며, 그것이 보도의 공정성을 어떻게 저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본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 KBS 보도를 통제하고 있으는지, 그것이 공정성을 어떻게 저해하는지 하는 문제다. 셋째는 KBS 내부의 관료화된 조직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 뉴스 생산 과정을 통제하고 있으며, 그것이 공정성을 어떻게 저해하는지 찾아내려는 작업이다. 사실 이 세 가지 측면 중에 한 가지만 제대로 규명해도 의미 있는 연구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저자의 작업은 세 가지 측면 전체에 대한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규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공영방송의 불공정 보도, 어디에서 오는가
방대한 연구 결과를 거칠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KBS의 대통령 보도는 대통령을 상대적인 비교나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려 하고, 청와대가 제공하는 정보와 메시지를 단순 중계하며, 때로는 객관적 사실을 벗어나 심리적 내면세계까지 묘사하는 전지적 보도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보도의 배경이 되는 정치권력의 통제 구조를 분석해 보면, 청와대 등 정치권력은 KBS의 지배구조를 통해 공식적 통제를 가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권위주의를 이용해 KBS 보도를 비공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력은 또 지연, 혈연, 학연 등 전통적 연고주의뿐 아니라 출입처에서 맺어진 후견적 인연을 이용해 보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인과 KBS 기자의 관계는 갈등관계라기보다는 공생적 유착관계에 가까웠다. 또 이 과정에서 기자의 권력 지향적 출세주의가 정치권력의 유혹에 넘어가는 주요 원인으로 작동했다.
둘째 유성기업 파업 보도 사례를 중심으로 본 KBS 경제뉴스는 이해당사자 간에 공정한 중재자 혹은 관리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부기관이 제공하는 편향된 정보에 크게 의존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또 공익이나 국익을 구실로 경제적 약자보다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고의 틀이 확인되었다. 그 배경이 되는 자본의 통제 구조를 분석해 보면, 자본은 기자 개인에 대한 연수 지원, 향응 접대, 각종 편의 제공 등의 금전적, 물질적 후견인 역할을 통해 은밀하게 보도에 영향을 끼쳤다. 지연, 학연 등을 이용해 기업인과 기자의 공적 관계를 사적 관계로 변질시키려는 전략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KBS의 조직 내적 통제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관료화된 조직문화다. 이명박 정부 이후 이병순-김인규 사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KBS는 관료화된 조직에 의한 내부 통제가 강화되고 제작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크게 위축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영진과 보도국 간부들은 기자들의 부서와 출입처 배치, 승진, 보직, 특파원과 해외 연수 등을 기자들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국·부제 부활과 함께 계층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계급과 서열에 따른(hierarchical) 통제도 강화되었다. 이는 뉴스 생산 과정에서 수평적 논의나 협의가 사라지는 대신 수직적 지시와 명령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기자들의 뉴스 취재·제작 과정에 특정 시각이 강요됨으로써 보도의 공정성이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정치권력, 자본의 외압과 관료화된 조직 내적 문화 속에서 기자들은 공영방송의 가치를 내면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회사 차원의 조직적 통제가 강화된 데 따른 오도된 조직논리의 내면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기자들의 자기 검열을 불러왔고 기자들의 전문직주의도 크게 후퇴시켰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KBS가 보도의 공정성을 제고하려면, 지배구조를 개선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며 내부의 관료화된 조직문화를 스스로 혁신하고 기자의 직업윤리를 회복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12년 논문이 2018년에 갖는 의미
이 논문은 2012년 발표되었다. 주지하다시피 2012년이라는 시점은 KBS가 95일, MBC가 170일간 파업을 했던 해다. 보수권력의 공영방송 장악이 안정화의 고지를 향해 나아가던 시기에 양대 공영방송 노동자들은 공동 총파업으로 저항했다. 자연스럽게 이 논문은 2012년 전후의 시점에서 공영방송 보도의 공정성 상실 문제에 대해 하나의 답을 제시한 연구로 읽히고 인용되었다. 저자 역시 서론에서 이명박 정부 하에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 후퇴되고 언론통제 메커니즘이 강화되는 배경을 연구의 필요성 가운데 하나로 역설하기도 했다.
나 역시 2년 전 이 논문을 유사한 맥락에서 읽었다. 당시 내 소감은 이 연구가 보수정부 들어 통제가 강화되고 자율성이 약화된 언론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함께 그 환경 속에서 저널리스트들이 어떠한 압력과 탄압, 유혹을 받고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기본적으로 ‘구조’ 중심의 접근이다 보니 구조 내 행위자들이 구조와 다양하게 부딪히고 충돌, 대응하며 타협해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그때는 약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2018년 다시 손에 든 이 논문은 전혀 다른 영감을 준다. 논문이 발표된 2012년, 그리고 이 논문을 처음 읽은 2016년 모두 나는 뉴스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고, 정치권력의 방송 장악에 맞서 싸우거나 혹은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시 논문을 집어든 2018년 현재 나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취재현장으로 돌아와 뉴스 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수년 간 그토록 나와 MBC 동료들을 억압하던 보수권력과 그 휘하의 경영진은 많은 흔적을 남기고 무대 뒤로 물러갔다(여전히 KBS, YTN 동료들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는 상황이지만). 그래서 자문하게 된다. 상황이 바뀐 지금, 2012년 저자가 제기한 이 질문들은 이제 무의미해졌는가? 우리는 정치권력/자본/관료화된 조직 내적 문화의 통제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정 보도를 할 수 있게 되었는가?
이제 우리는 정치권력 혹은 자본과 더 이상 후견적 관계를 맺지 않는가? 정치인과 기자의 관계는 더 이상 공생적 유착관계가 아닌가? 기자의 권력지향적 출세주의는 없어졌는가? 자본의 이해보다 경제적 약자의 이해를 우리는 대변하는가? 보도국 내부의 계급과 서열에 따른 통제, 수직적 문화, 그리고 연수·특파원 등 시혜성 인사를 통한 통제는 사라졌는가? 이런 질문들에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의 관성은 – 보수권력의 억압 속에 강제되고 깊어졌던 게 분명하긴 하지만 – 그 이전부터 뿌리 깊게 내면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들에 진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새로운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이, 2018년 이 논문이 주는 새로운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Posted in 2018년 1.2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저널리즘 논문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