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_KBS 백서가 나오기까지-방송 장악과 부역, 저항의 10년 _KBS 이병도 기자 (전 기자협회장)

지난 10년, 공영방송 KBS는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다. 2008년 언론사의 신뢰도와 영향력 등에 대한 각종 조사에서 1,2위를 달렸던 KBS가 최근에는 아예 순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의 보도 개입과 최순실 국정농단에 이은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KBS는 공영방송이라기보다 ‘공범’이라는 비판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빈소에서 쫓겨났던 KBS중계차는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쫓겨났다. 다름 아닌 공영방송의 주인인 시청자, 국민들로부터.

정권의 방송 장악
2008년 8월 8일, 이명박 정권은 임기가 남은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시켰다. 국세청이 부과한 법인세를 돌려달라는 소송에서 정 사장이 법원의 조정 결정에 응한 것을 놓고, KBS에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죄로 몰아 불법적으로 해임시킨 것이었다.1) 이후 정권은 이른바 ‘국정철학을 잘 구현’할 수 있다거나,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명박 선거캠프의 방송전략실장으로서, 그 유명한 ‘국밥집 광고’를 기획한 김인규 특보를 사장으로 내리꽂는가 하면, 세월호 보도참사 사태로 해임된 길환영 전 사장처럼 정권의 눈치를 스스로 맞출만한 이들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정권에 의해 임명된 사장들은 정권 홍보에 주력하며 정권에 불편한 진실들은 감추는 방식으로 정권에 충성하고자 했다. 정권과 공영방송 사장과의 유착관계, 이른바 정치적 후견주의(clientelism)2)가 과거 어느 때보다 절정에 달했던 것이 지난 10년이었다.
사장들 또한 자신들의 대리인을 세웠다. 능력보다는 자신의 말을 잘 들을만한 사람들에게 간부 보직을 나눠줬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학도호국단 특채자, 하위 직급 입사자 중 상당수가 고위 간부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렇게 사장으로부터 인사상 혜택을 입은 이들은 ‘윗분’의 심기를 거스를 뉴스나 프로그램을 통제하거나, ‘윗분’이 좋아할 만한 일을 함으로써 은혜에 보답했다. 정권과 사장 사이에 형성된 것이 ‘외적 후견주의’였다면, 사장과 간부들 사이에는 ‘내적 후견주의’가 성립된 것이었다.

양심 있는 이들의 저항
추락한 지금의 KBS를 보면 부끄럽긴 하지만, 양심 있는 이들의 저항도 계속됐다. 2008년 정연주 사장 해임 당시 ‘사원행동’, 김인규 사장 저지 투쟁 이후 다시 부활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이하 새노조)가 대표적이다. 불공정 방송에 항의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성명서를 발표했고 기자협회와 PD협회의 제작거부, 새노조의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유무형의 불이익도 부지기수였다. 징계에 회부된 새노조 소속 조합원만 10년 동안 110명이었고, 46명은 실제로 징계를 받았다. 이중 기자가 절반을 차지해 가장 많다.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 각종 사유로, 기존 제작과는 무관한 타부서나 지역으로 징계성 발령을 받은 이들도 43명이나 됐다. 대규모 파업만 세 차례였는데 기간을 모두 합치면 9개월이 넘는다. 대략 1년에 한 달씩은 자기 월급을 포기하며 싸운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공영방송의 투쟁이다.

 

 

기록과 투쟁,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이 같은 투쟁의 토대는 바로 ‘기록’이었다. 부당함에 분노하며 성명을 썼다.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거나 석연치 않을 때는 SNS로 기억을 공유했다. 비루한 현실에 질끈 눈 감을 때도 일기장에 남몰래 적었다. ‘투쟁’하지 못함에 부끄러웠지만, 적어도 ‘침묵’하지 않았음을, 훗날 어떤 길을 만들 수 있으리라 위안 삼으며, 그렇게 기록을 남겼다. 그리하여 기록은 기억이 됐고, 기억은 켜켜이 쌓여 신념이 됐으며, 신념은 하나둘 모여 집단의 투쟁이 됐다.
이런 10년의 기록들을 모아, KBS 새노조는 지금 백서를 쓰고 있다. 정권에 의한 KBS 장악과 내부자들의 부역, 그에 맞선 저항의 역사들이다. 그러나 이 백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것 같다. 정권에 부역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던 이들도 결국은 KBS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백서는 KBS의 참회록이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이 부끄러움을 씻기 위해선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부역자 문화가 청산돼야 함을. 그래서 ‘국민의 방송 KBS’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다.

Posted in 2018년 1.2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별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