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_기억과 기록, 영원한 미완-MBC의 보도 백서 기록 작업_MBC 양효경 기자 (보도 백서 기록팀)

반성과 다짐, MBC 구성원들의 의무
기억과 기록은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MBC 뉴스가 권력에 의해 장악되고, 시청자의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을 곱씹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괴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우리 스스로의 민낯을 낱낱이 대면해야 하는 것이었다.
2017년 9월 4일 MBC 총파업이 시작됐다. 총파업의 목표는 단지 김장겸 사장을 내쫓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7년 처참하게 무너진 MBC가 다시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MBC가 공영방송의 역할에 실패했는지를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전제 조건이었다. 그래야만 다시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반성과 다짐을 하는 것은 시청자들에 대한 MBC 구성원들의 의무였다.
2017년 9월 18일 보도부문 조합원들은 총회를 열어 백서 발간을 위한 기록 작업을 결의하고, 기록팀을 꾸렸다. 우선은 보도부문 구성원 142명이 백서에 대한 의견과 자신이 겪은 사례에 대한 개방형 설문을 작성했다. 백서 기록팀은 이 설문을 바탕으로 편파 왜곡 보도 사건 11개의 주제를 뽑아냈다.

기억과 기록, 고통스러운 작업
본격적인 기록 방식은 심층 인터뷰였다. 보도에 관련된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구체적인 상황을 묻고 기록했다. 기억을 꺼내놓는 기자들도, 기억을 기록하는 기자들도 모두에게 힘든 작업이었다. “서로 묻고 싶었지만 참았던 질문들을 할 수 있었고, 통으로 지웠던 시기를 복원할 수 있었다”(기자 A), “동료의 과거 행적을 묻고 듣다보니 불편함이 없지는 않았다”(기자 B)라고 털어놓았다.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기억을 꺼내 놓았고, 40명이 넘는 기자들이 이를 기록했다. 때로는 한 사람이 두 역할 모두를 하기도 했다. “백남기 농민 이슈는 내가 묻는 입장이었지만, <시사매거진 2580>에서 벌어진 일들은 내가 증언자로 인터뷰에 응해야 했다”(기자 B).
이 기록을 바탕으로 노동조합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와 기자협회장으로 활동한 15명의 기자들이 참여해, 각 주제별 원고 집필과 강독, 수정 작업이 진행됐다. 초고 작성에만 밤샘 작업으로 꼬박 2주가 걸렸고, 그 뒤에도 하루 12시간씩 강행군으로 원고 검토와 수정 작업이 3주간 더 이어졌다.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하려 했고, 표현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그렇게 400쪽이 넘는 방송 장악의 역사 기록이 모아졌다.

성찰과 재건, 백서가 남긴 깨달음
이 기록 작업 과정은 참여한 기자들에게 몇 가지 깨달음을 남겼다. 우선 과거를 대면하고 기록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영방송 MBC가 실패한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 논리는 성찰을 방해한다. 실패의 원인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집중해야 한다는 점도 깨달았다. 기록 작업의 과정에서 우리는 보도국에서 일상적으로 작용하던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제도와 문화를 발견했다. 고립된 개인의 저항은 한계가 있다. 소통과 저항을 일상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진실 규명과 신뢰 회복, 미완의 백서
이 방대한 기록물은 3개월의 작업 끝에 2017년 12월 노동조합에 넘겨졌다. 그러나 아직 미완이다. 문제가 됐던 불공정 보도를 지시했거나 직접 실행한 핵심 당사자들의 증언은 누락돼있다. 이 핵심 당사자들은 보도 통제를 자행한 정치 권력과, 이 통제의 결과물인 MBC의 편파 왜곡 보도 사이의 연결고리를 밝혀줄 핵심 증인이기도 하다. 진실 규명의 중요한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동시에 이 기록이 방송 장악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재 MBC에서는 MBC 정상화를 위한 노사 공동위원회를 구성하는 문제가 논의 중이다. MBC는 다시는 이런 편파 왜곡 보도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기존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방송사 내부에 일상적인 소통과 저항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기록은 그렇게 MBC가 진정 공영방송의 제 역할을 다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끝없이 계속 덧붙여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한 미완이다.

Posted in 2018년 1.2월 호, 격월간 방송기자, 특별기고.